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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22. 2020

이봉창 의사와 배제된 자들의 세계

"나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이봉창 의사는 종종 안중근 내지 윤봉길보단 한 클래스 떨어지는 것처럼 취급되곤 한다.(브런치 글의 관련 검색어 입력 메뉴에도 윤봉길, 안중근은 있지만 이봉창은 없다. )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안중근이나 윤봉길은 명확한 소신, 신념, 이상을 가지고 일을 행함이 비교적 뚜렷했던 반면 이봉창의 경우는 조금 사적인 원한? 상대에 대한 단순한 파괴 보복 감정? 에 의한 거사가 아니었나 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때문에 일뽕들이 독립운동가를 깔 때마다 항상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곤 한다. "이런 게 '신념가'라고요?ㅋㅋㅋㅋ")
그리고 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이봉창 의사에게 더 강한 끌림을 느낀다.



이봉창은 원래 주류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어찌 보면 전형적인 '강자'지향적인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마치 찐따가 찐따처럼 보이기 싫다고 같은 찐따와 어울리지 않으려 하고, 조롱받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일진들의 주변을 애써 맴돌려하는 그런 타입. 

그러나 결국 '일본'이라는 하나의 세상 속에서 자신은 결국 주변인, 한낮 '조센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이라는 이름의) 세상 그 자체에 대한 환멸감을 느끼며 김구와 접촉을 하게 된다. 그 뒤로는 다들 알다시피….

이봉창 의사는 "내가 죽었으면 그 시체를 밟고 갔을 것들"을 향해 장렬히 폭탄을 투척한다.



이 서사가 유독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나로 하여금 세상이라는 것이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쟤'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란 걸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의 충격을 떠 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센징으로 엮이기 싫다고 왜인의 주변을 애써 맴돌던 그의 모습은 마치 나의 성장기 모습을 떠 오르게 만들었다.


나도 엄마 아빠 품 속에 있었을 땐 세상이 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줄로만 알았다.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나에게 있어서 너네들은 다 '지나가는 백성 5' 내지 '지나가던 병사 3' 그런 존재인 거고.

엄마 빠 품에서 나오고 십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바로 '지나가던 병사 2'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주인공 주연배우는 다 따로 있었고 말이지. 


하느님이 세상의 대본을 작성하실 때 나의 역할, 나의 대사는 "으악!"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그 한마디 대사만을 내 뱃고 영웅의 발 밑에 쓰러져 죽음으로써 영웅을 더욱 화려하게 치장해주는 그런 역할 뿐이었다. 그리고 내 몸뚱이는 아~무도 기억할 리 없을 이름 없는 초야에 썩어 문드러져 짐승과 들풀의 양분으로 사라지게 되는 거지. 그것이 하느님이 '박세환'을 창조한 이유였고 '박세환'에겐 정확히 그 정도의 기능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까 세상이 다 달라 보이더라. 어차피 처음부터 나를 위한 세상은 없었던 거지.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세상. (내가 아닌) 너를 위한 도덕률. (내가 아닌) 너를 위한 관념들. (내가 아닌) 너를 위해 만들어진 세상 모든 것들.


기존에 아름다웠던,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강요받았던 모든 관념 가치들에 대한 정신적 얽매임들이 다 깨져버리게 되더라. 응, 그 관념들 나 너를 위해, 너를 더 위대하게 해주려고 만들어진 장치들이었던 거지 나를 위한 건 아니야.


내가 세상 스포트라이트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

이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던 듯하다.
과거엔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거지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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