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잘못이 아닌 쓰임의 잘못
“아니 왜 애꿎은 기계한테 화풀이를 해?”
마르크스는 기계가 잘못된 것이 아닌, 그 쓰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기계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 발전하는 것이다. 일정량의 재화 서비스를 생산할 때 소모되는 노동력의 양을 줄임으로써 조금 덜 일해도 같은 결실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기계의 존재 의미이다.
문제는 기계가 발전해서 노동력의 쓰임이 줄어들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노동계층의 소득이 같이 줄어든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단위 노동력 투입당 생산량은 기계 발전과 함께 늘어났지만 그 증가된 생산분은 고용주의 몫으로 돌아가지 노동계층의 몫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저 기술 사회에서, 100의 재화를 생산해내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100이었다. 그런데 기계가 발전해서 이젠 50의 노동력만을 투입해도 100의 재화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두 가지의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경기가 호황일 때 고용주, 자본가는 계속 100의 노동력을 투입해서 200의 재화를 생산해낸다. 물론 '같은 량'의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인 노동자들의 급여는 증가하지 않는다.
경기가 좋지 못해 100 이상의 재화를 생산해 보아야 그것이 시장에서 다 팔릴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말은 보다 좋지 않다. 전체 노동자 중 절반이 해고되거나, 혹은 전체 노동자의 근무량이 급여와 함께 절반으로 줄어든다.
어느 쪽이건, 노동계층이 이득을 보는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절약되는 인건비는 대게 고용주, 자본가 계층의 몫으로 돌아가지 노동계층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 주는 방향으로는 진행되지 않는다.
(혹여 이 과정에서 밀려난 노동자가 있다면, 새롭게 생겨나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야만 한다. 그리고 전편에서 말했지? 신규발생 직종은 구 직장에 비해 요구 스펙 수준이 어떻다?)
엑셀이나 한글과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의 발전은 필요한 사무인력의 규모를 줄어들게 만든다.
이동통신 기술의 발전은 노동자로 하여금 퇴근, 휴일까지 시도 때도 없이 업무에 시달리도록 만들었다.
교통기술의 발전으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묶이자 명절 기간이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것은 기술의 발전이 노동계층의 삶의 질 향상이 아닌 고용주들의 이윤 최대화를 위해 활용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현상들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생산수단(발전하는 기계들)의 '공유'를 주장했던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더 이상 고용주들의 이윤 최대화를 위해 활용되지 않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그 기술, 기계의 소유권이 (고용주 개인이 아닌) 집단 전체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엑셀이나 한글과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의 발전이 사무인력들의 업무 압박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동통신 기술의 발전은 노동자들 간의 원활한 관계교류를 위하는 목적으로만 활용될 수 있다.
교통기술의 발전으로 친인척의 집에 보다 빨리 도착하여 더 일찍, 그리고 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기술의 발전이 노동계층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 주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만큼 고용주가 추가 이득을 보는 측면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강제되어야만 한다.
…
농장의 기술이 발전하면 농장 소들의 삶도 더 좋아지는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그저 그 그 소유주인 농장주가 소들을 더 잘 쥐어짜서 더 좋은 우유와 육질 좋은 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게 해주는 방향으로만 활용될 뿐이다. 왜냐면 농장은 농장주 개인의 것이지 소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장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건, 그것은 소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된다.
조선시대건 현대시대건, 소는 그저 소다.
+자유쟁이들은 여기서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 이들은 설령 1차적으론 고용주만 이득을 본다고 해도, 그 이득에 의한 추가 투자가 이어짐으로써 결국 노동계층의 삶도 더 윤택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 그 병 X 같은 낙. 수. 효. 과 드립이다.
그리고 여기서 애써 낙수효과가 IMF로부터 공식 부정됐다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실에선 기술발전 추가 이득분의 일부는 노동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활용된다. 그리고 그 정도는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가 얼마나 더 사회주의 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