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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pr 10. 2020

꼰대와 멘토

방법론이 아니라 내용

오늘날 범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진보'약세 현상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중인데 그중에서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분석이 바로 이것이다.


"'진보'는 오만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다수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게 되었다."


만약 단순히 '오만하고 주관이 강해서'가 문제였다면, 누구보다도 더 오만하며 주장이 강한 트럼프 류 대안 우파들의 득세는 뭐라 설명할 텐가? 


사람들은 절대 "오만하고 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손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그 내용에 동의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오만한 과격함은 카타르시스의 요소가 되어 더욱 각광받게 되는데, 정확히 트럼프의 성공이 그러하였다.


그럼 신좌파 '진보'들은 왜?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그들이 특별히 더 오만하거나 주관이 세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 다수 대중들이 더 이상 공감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여성, 이슬람, 범죄자, 불량 청소년 등은 불쌍하고 가련한 피해자"라는 '진보'의 오랜, 전통적인 관념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를 게 말하니까 더욱 미움받는 것뿐인데, 설령 그것들을 보다 온건하게 말했다 한들 욕은 덜 먹을 수 있을지언정 사람들을 감복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수호세력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언어 표현의 과격성'에 있을 뿐이라 한다면 당신은 이에 동의하겠는가? 아니, 애초에 내용이 '박근혜'인데 이를 수호하는 주장이 과격하건 온건하건 그게 먼 의미가 있어?!) 


그럼에도 '진보'가 애써 '(내용이 아닌) 언어전달의 방법론'이란 측면에 대한 자기반성에 집착하는,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 역시 간단하다. 진보는 "여성, 이슬람, 범죄자, 불량 청소년 등은 불쌍하고 가련한 피해자"라는 오랜 관념을 죽어서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68년도 이후 세상 '진보'는 이들 집단과 너무 강하게 엮여버려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상품의 본질'에 대해 비판할 수밖에 없으니 그저 "상품의 포장지가 문제였다!" 하는 식으로 애써 자위할 수밖엔 없는 것이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꼰대'와 '멘토'의 차이도 간단하다.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꼰대'가 되어야 한다면 세상에 '멘토'란 존재할 수가 없겠지. 문제는 "누군가를 가르치려 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근데 그 내용이 너무 하찮음."에서 발생한다. 


"나이 X구녕으로 먹었냐?"싶을 정도로 한심한 이야기를, 혹은 요즘 시대엔 중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다 해 보는 수준의 인문사회학적 성찰 이야기를, '선배'라는 자신의 권위에 기대어 마치 음~청 대단시러운 마냥 떠들어대니까 '꼰대'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 결론을 간단하게 정리. 

전달의 방법론이 문제가 아니다. 

전달하는 내용이, 더 나아가 그런 내용을 생각한 당신 머가리 수준이 문제다!


+가르칠 만한 사람이

  가르치려 했다면

  "가르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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