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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당연해야만 하는 세상

미친 노력숭배의 노래

by 박세환

다들 이국종 교수를 알 것이다. 이 사람은 외과의사로서 죽어가던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고 부상을 당한 북한군 귀순 병사를 말 그대로 죽음으로부터 끄집어냈다. 물론 이밖에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거의 성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이타적 헌신을 통해 그가 죽음으로부터 끄집어낸 이들은 무수히 많다. 모두가 '21C의 허준' 이국종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다소 시큰둥한 논평을 낸 적이 있었다. 그는 정부에게 의료수가 조정 및 의료계 인력들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처우 보장을 요구하는 글을 내며 대략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국종 교수는 분명 위대한 사람이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다. 그가 너무 특별하기에, 그의 모습은 바람직한 의사의 표준으로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의사들에게도 '그와 같아질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또 한 번, 성공한 영웅의 인생은 잘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물론 내가 그의 "의료수가인상을 통한 의료계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은 단순한 의료계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봐야 했던 부분을 건드렸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가능성'을 무척이나 중시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로 무엇이든 극복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 무척이나 낙천적이고 예쁘장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예쁘장한'이야기는, 개인이 이룬 결과물을 순전 개인의 책임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떠한 일의 결과는 결국 개개인 노오오오오력의 결실임으로, 그것이 성공이건 실패건 개인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개개인이 가지는 '극복 가능성'을 무척 낮게 본다. 고로 성공이건 실패건 개개인이 거두는 결과의 많은 부분은 사회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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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종종 삶 속에서 '불가항력'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경우 그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체 무너져 버리곤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은 타인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사안의 결과 그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부여하는 자유주의적 인식은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어진다. 당연히 자유주의의 '귀족들'은 그러한 상황을 원치 않는다. 이럴 때 자유주의의 '귀족들'은 '영웅'을 찾아다닌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정말 불가항력이라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그걸 극복하고 승리를 이루어낸 영웅은 분명히 존재한다. 알프스를 넘어가 이탈리아 반도를 쑥밭으로 만든 한니발이나 13척의 함선으로 300척의 적선을 물리친 이순신과 같은 이들 말이다. 불우한 처지를 딛고 일어서 결국 세계를 정복해버린 칭기즈칸이나 섬 촌놈으로 전 유럽을 재패하고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과 같은 사례 말이다.


이들은 그러한 상위 (1%도 아닌) 0.0000001%의 '특수'사례들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영화, 소설, 드라마, 만화, 게임 등)들을 양산해 낸다. 그리고 그 스토리텔링들은 이를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끝없는 질책을 퍼붓는다.


"'그'는 해냈는데 어째서 '너'는 해내지 못하는가?!"

"'그'는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너'는 어째서 할 수 없다고 말하는가?!"


그렇다. 당신은 장애물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사회의 책임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0.0000001%의 슈퍼영웅들처럼 모든 것을 스스로의 능력과 노오오오오오력으로 극복해 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이들이 노오오오오력이라는 명분 하에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하고 공부해야만 하는 현실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 된다. 이순신이 그러했으니까, 나폴레옹이 하루 2시간도 자지 않았으니까,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도 적용해야 마땅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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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위 0.0000001% '특수 인간'의 삶이 나머지 99.9999999%의 사람들의 삶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제공하게 된다. 당연히 그에 미달되어 탈락하고 패배하는 이들은 그 자신의 나약함과 빈약하기 짝이 없는 능력을 탓해야지 사회를 향해 투덜거리거나 찌질 대려 해선 안된다.


해고 노동자들의 시위는 관심 가질 만한 이벤트가 못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 번의 클릭질로 수천만 원을 벌어드리는 고 오오오오오 급 금융노동자가 될 만큼 충분한 노오오오오오오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대 졸업생들의 불만은 들어줄만한 것이 못된다. 그들은 서울대나 연고대, 혹은 포항공대 내지 카이스트를 들어갈 만큼 충분히 노오오오오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 중에서도 군 장병 처우개선 요구는 특별히 하찮은 것이 된다. 그들은 실미도 용사들 만큼의 정신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나약해빠진 정신력으로 대체 무슨 전쟁을 해서 승리를 취하겠단 말인가!!


그렇게 다시 한번, 영웅의 인생은 잘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영웅의 서사가 개개인의 노오오오오오력을 강조하는 풍조와 맞물릴 때, 비정상은 정상이 된다. 개개인은 마땅히 이순신, 나폴레옹이 될 수 있어야 하며 히어로가 아닌 것은 죄악이 된다. 하루 12시간씩 주말 없이 일하고 공부하는 것은 아예 보편의 범주를 넘어 도덕의 범주까지 진입한다.("뭐? 하루 8시간씩이나 잔다고? 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니?" - 하루 8시간 수면은 의사들이 권장하는 의학적으로 바람직한 생활양식이다.)


한 번쯤 뒤돌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개개인에게 슈퍼히어로가 될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영웅은 애초에 '당연하지 않아서' 영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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