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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l 22. 2020

정의당과 제3의 길

진영논리가 아닌 신념?

정의당에서 '탈 민주당'바람이 거세다. 지금껏 '범 진보'라는 거대 진영논리에 묶여 거대 정당 민주당에 대해 별 다른 비판을 가하지 않았음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보인다. 


누차 반복하는 말이지만 진영논리는 나쁘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의 이러한 자가 문제 인식 자체는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상호 비판이 중요한데, 민주당과 같은 거대 여당은 아예 방향성 자체가 다른 보수야당의 비판 견제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에 범 진보 내부에서도 좀 비판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비판하겠답시고 그저 반대만 놓으면 기존 두 개로 나뉜 진영을 세 개로 쪼개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반대와 무조건적인 찬성은 같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며, 이런 식의 장난질은 한국사회의 건전한 성찰과 정치 수준 발전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간고등어식 극중주의 새정치의 문제점이라고 전에도 설명했던 바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대상에 대한 무조건 적 찬성 내지 반대가 아닌, 어떤 중요한 '(민주당이나 미통당 노선이 아닌) 제3의 가치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며 민주당이건 미통당이건 대상에 대한 찬반은 세부사안마다 이 새로운 기준에 의해 결정돼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정의당 사람들 역시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준이 없는 무조건적 반대는 무조건적 찬성과 다를 바 없는 진영논리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에, 정의당만의 '제3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


지금 정의당에서 민주당과 차별되는 '제3 노선'을 주장하는 이들이 들고 나오는 새로운 가치는 주로 '소수자 문제'에 걸쳐진다. 이를테면, 유물론에 함몰되어 경제적 불평등 테마만을 고집한다면 민주당과 차별을 두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소수자 약자 문제들, 그래, 그 X 같은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 피씨스트사상 거기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유물론자가 아니며, 누차 반복해왔듯 사회의 '약자'라는 것이 항상 100% 경제적 차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좌파라면 응당 '경제적 측면이 아닌 소수자, 약자들'에 대해서 역시 관심과 배려를 보일 수 있어야 마땅하다. 고로 정의당 '제3 노선'들의 상황인식은 '큰 틀에서' 반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


문제는 "(수치로 확연히 입증하기 어려운 관념 문화적 차원에 있어) 과연 누가 더 약자인가?"라는 질문의 정답을 누가, 어떻게 내놓느냐는 것이다. 간단하게, 숨 쉴 때마다 여성 인권과 여성의 사회권력 증대를 부르짖는 귀족 출신 강단 페미니스트 학자가 방구석 조커, 아서 플렉 남성보다 더 약자냐는 거지!



방구석 아서 플렉들의 삶의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곤궁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들의 사회부적응은 단순히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며 정신 관념적인 측면이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이들이 일상 속에서 받고 있는 사회적 경멸과 멸시들은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경제적 빈곤 이상으로 삶의 무게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소위 관념적 문화적 소수자 문제에 목숨 건 다고 하는 위선, 기만적인 신좌파 엘리트들은 방구석 아서 플렉 남성들의 문제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학교폭력에 희생되는 힘없는 남학생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들은 언제나 사회문화적 권력의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68 혁명 이래로 철저하게 매뉴얼화된 약자들인 여성이나 이슬람, 소수인종문제에나 관심을 줄 뿐이다. 아마도 정치자금을 모금에 그게 더 유리할 테니깐!


다시 한번 말 하지만, 누군가 광장의 스피커를 독점한 체 반세기 동안 "나는 약자예요! 나는 불쌍한 사람이고 당신들은 저에게 미안해야만 해요!"라고 떠들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약자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대다수의 방구석 아서 플렉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그러한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소위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하면서도 68 혁명 이래로 굳어진 그 천편일률적인 소수자 도식들에나 천착한다면, 너희는 십 년이 지나도 그저 하찮은 '즈엉이당'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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