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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l 16. 2020

작금의 박원순 정국이 마냥 즐거운 이들에게

상대의 불행이 항상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진보 엘리트들의 위선과 가식이 폭로되는 이벤트(?)들이 범 세계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반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며, 물고 뜯고 맛보는 그 흥겨움에 흠뻑 취하려 들 것이다. 지금처럼.


허나 (반복되는 말이지만) 진보 엘리트들의 위선을 이젠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기에,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씹고 뜯고 맛봄'에는 말초신경의 쾌락 이상의 정치적 유의미함이 없다. 이제 그건 더 이상 새로운 테마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그래서 그다음은?"이다. 


간단하게, 박원순 사태에 있어 단지 진보 엘리트들의 저급한 일관성을 비꼬는 것이 목적의 전부일 것이라면 우리는 진보인들이 자기 성찰을 하겠답시고 더욱 강경한 페미니즘 정책들을 밀어붙여 나서는 상황이 왔을 때도 그걸 "잘했다."라고 칭찬해 주어야만 하는가?

이를테면 기성 진보진영에서 주둥이와 아랫도리가 따로 노는 현실을 반성하고 자신들의 선(善)을 보다 실질적으로 실천하겠다는 명목으로 "한남 성욕 10배 더 옥죄기"와 같은 프로젝트들을 실행한다고 하면 그걸 잘했다고 박수처 줄 생각인가?

(이를테면, 진중권 교수가 딱 그런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진보의 비일관성과 위선을 비꼬기만 하다 보면 진보세력이 충분히 진보적으로 실천적이지 못하였음에 실망한 대중들이 "보다 강경한 진보적 실천"을 위해 진보가 아닌 다른 세력에게 표를 주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지금처럼 타자의 이상에 올라타서 진중권 교수의 뒤만을 열심히 쫓아가다 보면 보수가 새로운 진보로 변신해서 민주당의 박살난 표심을 주워 먹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는가?



...


전부터 진보의 이상 자체에 문제의식을 느껴왔던 이라면, 단순히 말과 행위가 따로 노는 진보 엘리트들의 위선을 비꼬는 것을 너머 그들이 말하는 '진보' 그 이념적 실체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가진 선(善) 역시 너희가 추구하던 그 선(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자기 고백하며 씁쓸한 이념적 백기투항이라도 할 생각이 아니라면, 한 집단에서 자신들의 선(善)을 충분히 실천하지 못했다는 과오가 전혀 다른 선(善)을 가진 또 다른 집단에 대한 신뢰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은 가능한 한 빨리 접는 게 좋을 것이다. 


이제 단순히 그들이 자신들의 선(善)을 충분히 실천하지 못한 것을 조롱함을 넘어, 과연 그들이 말했던 선(善)이 바람직한 모두의 선(善)이라 할 수 있는지도 논해야 한다. 


단순히 보수뿐 아니라 진보내에서 '조금 다른 진보'를 모색하겠다고 하는 이들에게 역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익 우파들은 "새로운 보수" 말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진병영'과 '창조경제'가 그러했듯, '새정치'가 그러했듯

그들의 '새 보수'역시 여전히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참다못한 친 박원순 성향 페미니스트 검사님께서, 페미니즘 정국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도출과정에 가증스러운 면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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