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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l 27. 2020

'대안우파'라는 용어

가치중립적인 용어인가?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성우파들은 자신들의 물주(?)인 기업, 교회, 군부의 논리에 충실하다. 

기업을 위해 자유시장을 주장하며, 교회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성애를 공격한다. 그리고 군부를 위해 반공 애국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이 어설픈 논리의 연합에 있어 68 혁명 신좌파적인 가치들, 이를테면 피씨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종종 누락된다. 간단하게, '기성'우파들은 정치적 올바름이나 정체성 정치, 페미니즘과 같은 신좌파 과잉 현상에 대해 관심이 없다.(필자의 글에서 너무나 많이 반복 언급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68 혁명이 있고서 반세기가 흐르자 일반 대중 사이에서 신좌파 과잉 현상에 대한 거부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진보좌파진영을 장악한 신좌파들에 의해 '우파'로 규정되었고, 또한 기존 우파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해서 '대안'을 붙여 대안우파라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정치사회의 장에서 상대적으로 기반이 빈약한 신생 그룹이었고(극히 최근까지도 신좌파사상에 대한 거부는 공식 정치무대에서 절대 용인되지 않았다. 68 혁명 신좌파는 빛이요 길이요 진리였으며, 그러해야만 했다. 전후체제의 지배계급들이 그걸 원했다.) 때문에 이들을 적대했던 기성 정치그룹들에 의해(기성 좌파와 우파 모두 다. 피케티 식으로 말하면 상인 우파와 브라만 좌파, 울타리 속의 좌우파) 대안우파라는 용어엔 "무식하고 못 배우고 과격한"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어 사실상 멸칭으로 전락했다.

'조센징'이라는 단어처럼.   


때문에 명백히 대안우파적 성향(자유시장엔 별 다른 호감이 없고 그저 페미니즘과 같은 신좌파 과잉 현상에 분노하는)을 가진 이들조차도 자신들을 대안우파라 부르면 이를 무례함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들을 '우파'로 칭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 제시도 있다.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이지만 경제 부분에 있어선 사회주의적인 적극적 재분배를 추구하는 이들도 있는데 단지 신좌파적인 가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우파'라 칭하는 것이 정당하냐 하는 문제제기. '좌파'를 규정함에 있어 어째서 경제적 문제의식보다 페미니즘이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동의 여부가 더 중요하냐는 거지.



그럼에도 그들이 종종 '우파'로 칭해진다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현시대 세계 진보좌파진영을 장악하고 있는 신좌파 자본가 졸부들의 존재를, 그들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간단하게, 신좌파에 반대하면 진보좌파의 세계에서 추방된다. 현대 진보좌파진영에선 경제적 평등보다 페미니즘과 이슬람 옹호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안우파'가 아니면 68 혁명 신좌파적 가치에 반대하는(기업 만세 경제 자유주의밖에 관심 없는 기성우파들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이들을 칭할 별 다른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안우파 '적인' 성향

대안우파 '스러운' 스텐스.


+골수 기독교 원리주의와 대안우파는 종종 혼용된다. 이 두 개를 구분하는 방법 역시 한 번은 논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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