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경쟁과 순환을 위하여
정치건 경제건 고인물은 썩기 마련인지라 경기장은 언제나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끝없이 상호 견제와 싸움을 벌이는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그 균형이 일시적으로 무너져 특정 세력이 일방적 우위를 점하는 상황 역시 종종 발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정치에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엔(일시적 일당독주) 그 정당이 제도적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러 시도하지만 않는다면 그 상황 자체는 계속 놔두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에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엔(거대 독점기업의 탄생) 공권력이 개입을 해서라도 그 상황을 해체시켜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반 독점법. 체크엔 밸런스)
혹자는 이러한 나의 생각이 비 일관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간단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의 정당과 경제의 자본은 분명 다르다는 것인데 그 차이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분열의 가능성'이다.
(제도적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져버린 상황만 아니라면) 거대 정당은 언제나 분열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정당'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지형 하에서 특정 정당이 압도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된 상황이라 하더라도 내부의 불만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분당을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다.
거대 정당의 분당. 이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나 분명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의 무대에서 소유주가 명백한 거대 독점기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유주와 피고용자의 위계 구분은 명확하다. 피고용자는 아무리 노오오오오오력한다 해도, 타인의 사유물인 회사를 빼앗는다거나 분열시킬 수는 없다. 그저 '좀 유능하고 인정받는 사원'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경제의 무대에서, 한번 거대 독점기업이 형성될 경우 이것이 내부적으로 분열될 수 있는 방법이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정신이 나간 대주주들이 자기 회사를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야 말이다.) 유일한 방법은 국가 공권력의 개입으로 인위적인 분리를 추진하는 것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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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분열이 아니라 하더라도 외부 반격에 의한 독점적 지위 상실 역시 따져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나의 견해는 명확한데, 정치에선 그것이 가능하나 경제에선 불가능하다는 것.
정치는 가치 싸움의 장이다. 그리고 가치 싸움의 세계에서 한 세력이 모든 종류의 가치를 생산(?)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단하게 한 정치세력이 사회주의와 자유시장을 동시에 주장할 순 없다. 기껏해야 중간에서 타협을 보는 방법이 있을 뿐인데, 이 경우엔 양극단의 사람들은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가치 투쟁의 장으로써 정치엔, 언제나 "비어있는 틈새시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 물질적인 것을 생산하는 경제의 무대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기업은 노란색 옷과 파란색 옷을 모두 생산할 수 있다. 정치 정당은 사회주의와 자유시장을 동시에 주장할 수 없지만, 출판사는 양쪽 입장의 책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것은 이론적으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대기업일수록 생산라인을 다양화하여 더 다양한 대중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리고 군소기업은 이런 제품군 다양성 경쟁에 있어 결코 거대기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정부 개입이 전혀 없는) 자유시장의 세계에서, 군소 후발주자가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통해 기성 주자를 따라잡는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이야기인가? 더 적은 자본으로 더 높은 품질의, 더 다양한 제품들을 더 저렴한 가격에 생산해낸다고? 동네 구멍가게 떡볶이 사장님이 노오오오오오력만으로 삼성이나 LG와 경쟁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떻게?(물론 현실 경제에서 대기업 대자본이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것은 정부에 의해 규제된다.)
그런데도 자유 쟁이들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무책임한 말을 밥먹듯이 내뱉는다. 그럴 수밖에. "그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자유시장의 정당성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릴 테니 말이다. (물론 "독점이 전체의 발전과 공리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보다 긴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경제적 독점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다.
+리사수가 위대한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인 것이다. 전편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영웅은 '특별하기' 때문에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