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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04. 2020

애정결핍이 만드는 비극적인 자아상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인간의 행복이 그저 물리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 의해서만 가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념적 측면, 이를테면 주변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 여부 역시 중요하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찐따남들의 정말 심각한 문제 역시 여기서 나온다. 이들은 물리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풍족함 여부를 떠나 관념적인 행복 측면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망가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육체가 주기적인 양분공급(밥)을 필요로 하고, 이것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말라비틀어져 죽게 되듯이

정신도 주기적인 양분공급(사람, 관심, 애정)을 필요로 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말라비틀어지게 된다.


인간의 뇌에는 긍정적인 관심 교류, 애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분이 주기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면 결국 말라비틀어져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당연히 이 경지에선 타인과 정상적인 관계교류에 심각한 지장이 생긴다. (한번 소외되어 정신이 비틀어져버린 이를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게 하려면 남들보다 열 배, 스무 배의 사랑과 관심을 투입해야 한다.)


찐따 히키코모리들의 가장 큰 고통은 여기서 나온다. 이들은 대체로 어딘가 하자가 있는 이들이기에 집 문 밖의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런 이들에게 어떻게 정상적인 세계관과 가치관, 타인에 대한 연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받아본 적이 없는데..


왜 커뮤니티에 보면 농반진반으로 이런 이야기들 나오잖아? 꿈속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키스를 하려 다가갔는데 입술을 훔치려는 바로 그 시점에서 꿈이 깨져버린다고, 꿈은 기억을 기반으로 꾸며지는 한 편의 소설인데 "아름다운 여인과의 키스"라는 기억 데이터가 없어서 그런다고ㅋ

그런데 이거 그저 농담으로 넘어가기엔 되게 중요한 부분이다. 


...



사람은 다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싶어 한다. 멋지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삶의 목적이며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이유. 사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자아상(멋지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을 이미 확립한 이라면, 어디 어떻게 떨어져 살아간다 하더라도 딱히 불행할 일이 없다.


히키코모리 찐따들도 사람이다. 이들 역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타인과 사랑, 관심을 주고받으며 예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종종 상상해 보곤 한다.(영화 속 조커가 그랬듯이. "사랑한다 아들아." 이거 남들은 조커의 망상증 정신병 기질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까던데 나에겐 굉장히 슬프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사실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대체로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긍정적인 장면을 상상하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면 빌런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태어나서 타인과 긍정적인 정리 교류를 해 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긍정적인 장면들은 관련 데이터 부족으로 얼마 못 가 끊겨버리고 상상 속의 자신은 히틀러, 스탈린으로 변해서 타인을 향해 총칼을 휘두르고 있다. 타인의 머리통을 군홧발로 짓이기며 미소 짓고 있다. 

많은 경우 이 변환은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의식적인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


...


찐따 히키 중에 밀덕 기질 있는 이들이 왜 그렇게 많을 거라 생각하는가?

이들은 왜 전쟁 테마에 열광할까?

조커는 왜 항상 '죽음'에 관한 상상을 하는 것일까?

찐따 대안 우파들 중엔 왜 히틀러, 스탈린에게 관심 가지는 이들이 많을까?(서양도 마찬가지. 별로 긍정적인 인간들도 아니었고 죽은 지도 엄청 됐는데 여전히 세계 찐따 커뮤니티들에 각종 밈으로 끝없이 활용되어 나온다.)


당신은 그런 증상이 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가? 



+스탈린의 아내 예카테리나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다 결혼 2년 만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스탈린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스탈린은 그녀를 절절하게 사랑했다. 

스탈린은 그저 자신이 알고 있던 방식대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을 뿐. 

스탈린에게 있어 폭력이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운 유일한 사랑의 표현방식이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1907년 12월 5일, 스탈린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한 점의 인간성은 그렇게 완전히 소멸돼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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