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Aug 10. 2020

'나중에 쳐들어가는 독일'이라는 신화

티거를 완성하고 전쟁을 시작했으면?

밀덕들, 특히 세계대전 독빠들 사이에는 어떤 가설이 널리 퍼져있다. 

바로 '나중에 쳐들어가는 독일'이라는 가설이다. 


"독일이 39년이 아닌,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판터와 티거를 충분히 확보한 44년 내지 45년에 전쟁을 시작했다면 승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게 이 가설의 주된 골자라 하겠다. 물론 헛소리이다.


이 가설은 기본적으로 "내가 노력할 때 적은 놀고 있을 것이다."라는, 자기 객관화의 결함 속에서 만들어졌다. 간단하게, 독일이 45년까지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서방 연합군이랑 소련군은 국경 너머로 그걸 보면서 그냥 놀고만 있나?ㅋ


특히 개전이 늦어질수록 대 소련전은 독일에게 더욱 비참해졌을 확률이 높다.

실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41년 당시 소련군은 아직 대숙청의 여파로부터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고급 지휘관이 해당행위 반동분자로 몰려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전문적 역량이 심히 의심스러운 새내기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독소전쟁 초기 독일군은 '그 여파'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만약 소련 침공 시점이 늦어졌다면 소련군의 신참 지휘관들도 어느 정도 자기 자리와 역할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그리되면 독일의 진군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소련군 T-34 85mm 후기형


그리고 애초에 '판터와 티거'라는 물건 자체가 소련군의 우월한 무기들(ex : T-34, KV)에 놀란 반작용으로 나와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간단하게, 소련의 우월한 무기들을 접하지 못한 독일이 45년 이전에 자발적으로 판터와 티거를 개발했을 확률은 0으로 무한 수렴하는 것이다. 

소련군을 접하기 전의 독일은 자신들의 주력이었던 3호, 4호 전차 정도면 전쟁을 치르기에 충분할 것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달랐다. 스페인 내전과 겨울전쟁의 경험을 통해 소련군은 이미 '더 우수한 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소련군의 우월한 무기들(T-34, KV, 모신나강 소총, 카츄사 다연장로켓 발사대, 빠빠샤 기관단총, etc)은 독일의 침공을 받기도 전에 이미 기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독일군이 41년 침공하지만 않았더라면 소련은 더 우수한 무기들도 개발할 계획이었다. 


그나마 독일이 41년에 소련을 침공했기 때문에 그런 우월한 소련 무기들은 충분히 양산되지 못했고 독일군은 빈약하나마 자신들의 3호, 4호 전차로 소련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일 독일이 45년이 되어서야 소련을 침공했다면? 41년식으로부터 전~~ 혀 발전할 것이 없는 독일의 3호 전차와 단포신 4호 전차들은 이미 충분히 숙련된 지휘관들의 통제를 받는 소련의 우월한 T-34와 KV들 앞에서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나중에 쳐들어가는 독일'이라는 가설은 현실성이 한~참 결여된 신화에 불구하다. 


+소련군을 격기 전의 4호 전차와 소련군을 겪고 난 후 개량된 4호 전차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독일군 쾨니히스티거(티거2. 킹타이거)


작가의 이전글 애정결핍이 만드는 비극적인 자아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