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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12. 2020

소련군 이야기

좋은 군대 나쁜 군대

밀덕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간 서방 중심 시각 하에서 폄하되어온, 2차 대전 당시의 소련군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활발해졌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전체 독일군 사상자의 75%가 동부전선에서 발생했다던가 독일군이 들어오기 전부터 상대보다 우수한 무기들(T-34, KV, 빠빠샤, 모신나강, 카츄사 로켓런처, etc)을 확보해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 등등.


서방 중심 연구들이 그간 소련군을 지나치게 폄하해왔던 측면이 분명 있었기에, 이런 식의 재평가 분위기는 분명 합당하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건 지나치면 안 되는 법. 고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소련군의 약한 측면들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일단 소련군이 여타 진영(서방, 독일)보다 명백하게 떨어졌던 분야가 바로 포탄 제조기술이었다. 


T-34(85mm)


43년에 85mm 주포를 탑재한 계량된 T-34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독일군은 이들의 주포가 자신들의 88mm 포에 근접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까 봐 무척이나 긴장했는데, 조사 결과 소련군의 85mm는 독일군의 75mm PAK대전차포 수준의 성능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포탄 제조기술에 있어서 명백한 열세였던 소련은 상대 진영과 동급의 공격력을 내기 위해서 포탄을 상대보다 10% 이상 더 크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공격력이면 크기가 작은 게 더 유리하다. 이를 다루는 병사들의 피로도와 연사 속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역작 of 역작이라는 T-34의 차체에 대해서도 좀 더 논해보자. 이 전차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시대를 앞서간 수려한 경사 장갑에 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장갑 두께라면 수직으로 서 있는 것보단 살짝 경사져 있는 것이 방어력 극대화에 좋긴 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단점은 있는데, 경사 장갑을 도입할 경우 그냥 직각인 상태보다 내부 공간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T-34의 승무원들은 경사 장갑에 의해 찌그러진 지극히 좁은 공간 속에서 자기들끼리 몸을 맞대고 남들보다 더욱 큰 포탄을 활용하며 헉헉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붙인 채로 전투에 임할 경우 단순히 승무원의 피로도가 누적되는 건 둘째치고 일단 사상률 자체가 크게 올라간다. 좁은 공간 내에서 모든 것과 몸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한쪽면에 타격이 발생할 경우 반대편 끝까지 그 충격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티거1


그런 면에 있어선 독일군의 티거는 확실히 우수했다. 시대에 뒤쳐진 정직한 수직 장갑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내부 공간은 확실히 쾌적했고 티거 승무원들은 적들보다 훠얼씬 윤택한 환경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당연히 승무원의 피로도는 상대적으로 낮았고 사상률도 크게 떨어진다.(전차의 한쪽 귀퉁이에 충격이 가해진다 해도 반대편 끝의 병사는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이 부분은 티거 자체의 극강 맺집이라는 측면과 시너지를 이루며 티거 승무원의 생존율과 숙련도를 극도로 높여주었고 결과적으로 100 킬을 넘긴 에이스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지게 된다. 


아니, T-34의 내부 공간 문제는 티거까지 갈 것도 없이 미국의 주력 셔먼과 비교해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미군에게 공여받은 셔먼을 타본 소련 전차병들은 "마치 서유럽의 고오급 호텔에 온 것 같다!"며 극찬을 쏟아냈다고 한다. 반면 미국에 보내진  T-34는 미국 엔지니어들로부터 악평을 면할 수 없었고 이때 생긴 T-34에 대한 미국의 우월의식은 625 전쟁 초반 미군이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이거 말고도 많은데 남은 이야기는 또 기회 되면 계속..


+로스케들은 애국심 때문에 자신들의 85mm가 타 진영 75mm 수준의 공격력밖에 가지지 못했다는 점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때문에 로스케가 만든 세계대전 게임들 속에선 소련군 85mm가 독일군 88mm에 근접한 공격력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명백한, 그리고 의도적인 고증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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