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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Sep 03. 2020

차등에 대한 집착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일전 학생 시절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좌파 경제적 가치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하면서 했던 말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상대방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걸, 내가 특수계층이라는 걸 입증받고 싶어 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라도 말이야" 

맞는 말이다. 남들 다 400 버는 사회에서 혼자 300 버느니 남들 100 버는 사회에서 나 혼자 200 버는 삶이 더 좋다는 여론조사도 있지 않았던가? 


오늘날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그 옛날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될 때도 평민들의 반발이 컸다고 했다. 천민들과 동격이 되어버림으로써 천민에 대한 우월의식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는 게 싫었다나?


...


특히 한국에선 "학창 시절 공부 잘했음"에 의한 우월의식이 정말 오래 남는다. 남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피눈물 나는 세월이 그만큼 지독했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공부 잘함"이라는 훈장을 길이길이 간직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블라블라 주문을 외워라 인풋이 어쩌고 아웃풋이 어쩌고~



흔히들 이런 사람들과 자유시장 마니아들(능력! 성과 중시! 결과의 차등!)이 등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런 우월감에 환장한 치들과 자유시장 사상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자유시장에선 장기적으로 보장되는 차등보단 그때그때 성과에 따라 주기적으로 계층이 전환되는 상태를 더 중시함에 남들보다 수능 성적이 더 높다는 둥 하는 따위의 이유로 그 사람에 대한 우월 대우가 필요 이상으로 장기 지속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 쟁이들은 오히려 고정적인 시험평가에선 낙제점을 받은 이라 해도 별도의 능력과 노오력으로 얼마든지 계층이동이 가능한 상태를 더욱 중시한다. (그니까 애초에 자격과 비자격 여부를 천편일률적으로 구분 지어 놓는 상태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더 간단하게 말해서 자유시장 쟁이들이 중시하는 건 '효율성'이지 차등 그 자체가 아니다! 순수 자유시장의 관점으로 차등대우는 어디까지나 그것이 집단 전체의 효율을 더욱 향상하는데 일조한다고 보일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인 건 절대 아니다. 박사학위 소지자와 고졸 노동자를 동급으로 취급해버린다 해도 그것이 전체 효율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그리 해도 상관없다는 게 자유시장 쟁이들의 입장에 더 가깝다. 물론 본인은 자유시장 쟁이들을 무척 싫어하지만 어디까지나 원론적으로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


그것이 자유시장 사상과 동일하건 다르건, 위에서 언급된 저런 '우월감 집착자'들이 좌파보단 우파 쪽에 더욱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인 듯싶다. 좌파는 아무래도 차등을 없애고 상하 간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를 계속 할 텐데 그러면 우월감 집착러들 입장에선 그들이 원하는 '우월의식'을 유지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


...


'더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차등대우는 필수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차등을 통한 우월에 대한 집착이 극심한 계층 고착화까지 이어질 경우, 오히려 사회 전체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당연히 자유시장 쟁이들은 이러한 상태를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차등이 효율성으로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역치 값을 넘어간 상태인 거지.


이를테면 학창 시절때 남들보다 미분적분 문제를 소수점 이하 둘째 자리 까지 더 정확하게 풀어냈고 영어단어도더 많이 외웠었노라는 어떤 자부심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수십 년간 지속되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역치 값'을 넘어가 있는 것은 아닐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내가 학벌주의자들을 조롱할 때 자주 했던 이야기

"그럼 SKY 나온 기라성 같은 NL종북의 수뇌부들도 마땅히 존경받아야... 너희 공부 좀 했노라고 엣헴거리는 사람들 중 리정희보다 공부 잘했던 사람이 몇이나 있냐? 어서 빨리 서울대 전교 수석의 빛나는 리정희 동지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자! 이 열등한 중생들아^오^" 


결론 : 어딜 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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