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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Sep 01. 2020

조선에 대한 경멸

전근대 사회에 대한 비난

한국 우파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여러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조선에 대한 비하이다. 간단하게, 조선은 낙후된 종교(유교) 원리주의에다 신분제, 거기에 제대로 된 상하수도 체계조차 갖추지 못해 온 거리가 똥오줌으로 뒤덮여 있었던 아주 열등하고 저급한 국가였다는 레퍼토리.


...


종종 '같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지곤 하지만 박정희식 개발독재 보수의 관점과 조선식 유교 체제의 관점은 다르다.(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인간의 모든 가치질서 체계들을 좌 아니면 우, 혹은 진보 아님 보수 식으로 이분화해버리는 현대 정치의 관행은 정말 나쁘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해방 후 조선에 대한 경멸이 가장 널리 퍼져나갔던 시기가 바로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이었다.


오늘날에는 전근대식 체제의 수호자들(ex : 종교 원리주의자)과 근대주의자들(자유, 자본, 시장, 이성, 합리, etc)이 종종 (사회주의를 앞세운 진보좌파에 맞서기 위해?)'같은 보수 우파'로 엮이곤 하지만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활성화되기 이전 단계에서 이 둘은 사이가 정말 나빴다. 깊게 들어갈 것도 없이 프랑스 대혁명부터가 이 둘의 피 터지는 싸움 아니었던가?


유럽에서부터 제3세계까지, 사회를 전근대적 농경사회 레벨에서 근대적 산업사회 레벨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근대주의자들이 '근대'를 달성하려 할 때마다 전근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기득권층이 매번 격하게 저항하곤 했으니까. 



전근대 농경사회의 기득권들(귀족, 지주) 입장에선 핏줄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똑같이 취급받고 신령한 것들(종교, 조상신, 삼신할머니, etc)의 권위가 약해지는 '근대화'의 과정들은 실로 혐오,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떤 미래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우리에게 '미래사회'를 설명해 준다.


"미래는 진정한 성 해방 사회입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끼리 물고 빨며 살아갑니다^^. 어때요? 멋지지 않습니까?^오^"


이때 느끼는 당신의 충격이 


"앞으로 사회에선 핏줄에 의한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동등한 취급을 받게 되며, 신의 계시가 아닌 수치로 정립되는 과학, 논리를 기반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됩니다. 그리고 돈이 정말 중요해지죠."


라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전근대사회의 귀족 지주 계층이 느꼈던 문화충격과 같다고 보면 된다. 

혐오, 경멸, 역겨움, 천박함, 더러움...


... 오늘날 많은 이들이 차별금지법에 저항하듯, 전근대사회의 수호자들은 '근대화'를 거부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근대사회의 수호자들이 느끼는 '근대화된 사회'란 인간이 기본적인 예의조차 상실해 버린, 더럽고 천박한 사회이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자신들이 유지해 왔던 전근대 사회는 어떠한가? 여기선 모든 이들이 태생에 따른 신분을 받아들이고 분수에 맞게 행동하며 위아래의 질서를 숭배함에 혼란과 어지러움을 기피한다. 그리고 조상의 영혼과 전능하신 신 앞에서 항상 겸손을 잃지 아니함에 같잖은 지식 몇 줄 읽었다고 쉽게 교만해지지도 않는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아름다움인가?!


(박정희와 같은) 근대화 주의자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원하는 근대화를 위해서 사람들이 가지는 이러한 전근대 사회에 대한 낭만을 깨 부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사회가 근대화의 단계에 돌입할 땐 언제나 항상 전 단계인 전근대 사회에 대한 경멸과 폄하 작업이 이어진다. 



이제 전근대 사회는 더 이상 목가적인 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근대 사회는 핏줄에 의한 부당한 속박으로 사람들이 신음하던 부조리한 사회가 된다. 전근대 사회는 유교나 기독교 같은 비 이성적이고 비 합리적인 관습 체계 하에서 논리와 합리가 번번이 짓밟히는 한심하고 무식한 사회이다.    

그리고 추가로 낙후된 기술체계로 인해 도시엔 제대로 된 위생시설조차 없어서 똥오줌이 거리 지천에 널려있던 불결하고 더러운 사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박정희 시절 개발 엘리트들이 조선시대를 바라봤던 바로 그 관점이기도 했다! 


'박정희 조국 근대화의 신화'를 신봉하는, 한국 보수우파들에게서 종종 보이는 조선시대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감은 이러한 연고로 한국 우파들 속에 뿌리 내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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