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고 하는 특수한 제약
나는 동성애에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애써 그것을 막으려 한다기 보단, 동성애자들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 매달린다는 느낌?
많은 동물들이 그러하듯, 문명 이전 단계의 인류에겐 난교는 일상이었다(속칭 개족보). 애써 그걸 수치스럽게 여길 것 없이, 섹스에 대해서 간식을 먹고 게임 한판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성교의 대상 역시 제한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동성애와 근친상간은 아마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문명 초기단계의 기록을 보면 아버지와 딸이 함께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안정적인 인구성장,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양육 제공은 더욱 중요해졌다. 초기 문명사회의 이러한 추세 속에서, 난교 문화의 지속으로 '출처불명의 아이'가 계속해서 탄생한다는 것은 분명 무척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일단 '태어나 진'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양육을 제공함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한 명의 성인 남성과 한 명의 성인 여성이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한쌍의 남녀는 자신들이 돌보는 아이들을 '책임'져야만 한다.
'가장 이상적인 양육체계'를 위해 점차 일부일처제가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출처불명의 아이 탄생을 줄이려 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풍조가 널리 퍼지게 된다.
더 이상 남녀 간의 난교는 옳지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한 남성과 한 여성은 한 평생 자신들끼리만 '섹스'하여야 하는 것이다. '부부'라는, 그리고 '결혼'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자리를 잡아간다.
'연애'라는 개념은 '결혼에 대한 예행연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자신들끼리 1대 1의 암묵적 의리 관계를 유지하며 교제를 이어가는 것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것.
'난교'가 '보편'이었는데 '남녀 일대일 성교 제한'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관계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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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성애는 다르다. 동성애는 애초에 '아이의 탄생'이라는 불상사를 감안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보편화된 시대에서도 동성애는 한동안 계속 난교 형태로 행해져 왔던 것 같다. 이를테면, 동성애가 크게 흥행했다는 고대의 기록을 보아도 동성애 문화 속에선 이성애 문화와 같은 '일대일의 암묵적인 의리 관계'라는 형식이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특별히 친한 친구관계는 있을 수 있다.(유비, 관우, 장비도 서로 얼마나 친했던가!) 그러나 그것이 '일대일의 암묵적 의리 관계'로 유지되는 것이었다고 하기는 조금 의문스럽다.
'일대일의 암묵적 의리 관계(연애, 부부)'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치정 갈등'이다. 간단하게, "너 나랑만 놀아야지 왜 쟤랑 놀아?" 이거. 그런데 동성애에 관한 기록에는 그런 '치정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고대 그리스 시대 동성 간의 치정 갈등을 다루는 기록을 본 적이 있는가?)
간단하게, '동성애'는 있었을지언정 '동성연애'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성 간에도 일대일의 암묵적 의리 관계가 존재했다면, 동성애가 그렇게 성행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 사람들이 동성결혼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물론 우리는 그런 일이 없음을 알고 있다. "결혼은 여인과, 사랑은 미소년과"라는 저명한 문장은 당시 사람들도 동성애라는 개념과 결혼이라는 개념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도 그렇고 중세 일본도 그렇고 남성 동성애는 주로 미소년 하급자와 성인 상급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혹자는 그것을 현대적인 '연애(일대일의 암묵적 의리 관계)'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확실한 건 그럼에도 그것이 결혼까지 확장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애초에 현대적인 연애 개념에 대입하려 하기엔, 과거의 동성애는 대부분 그다지 수평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동성 간의 성 접촉은 군대와 같은 '전사집단' 내에서 상하급자 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들이 그것을 애써 '연애'라고 표현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
어떤 식으로 건 분명한 것은, 동성애 문화는 이성애 문화랑은 그 형태와 방식에 있어서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이고, 그들이 그렇게 "다른 형태와 다른 방식으로" 동성애를 즐긴다 해서 아무도 뭐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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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상대주의는 '진보'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축이다. 그리고 이 문화 상대주의에서는 소수 문화가 다수, 주류문화에 흡수되지 않는 것을 무척이나 중시한다. 흉내 내지 말고 자신들의 것을 고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본다. 빨간색 옷을 입는 소수 문화의 사람이 파란색 옷을 입는 다수 문화의 세계에 흡수, 동화되어 그 속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그냥 빨간색 옷을 고수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동성애 문화는 많은 경우 '통탄할 만' 하다. 동성관계에서도 애써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을 구분 지으려 한다. 그렇게 이성애에 대한 흉내, 카피로써 일대일의 암묵적 의리 관계를 유지하고, 종국에 결혼까지 생각한다. 이것은 철~~ 저하게 이성애 문화에 대한 카피인 것이다.
빨간색 옷을 입던 사람은 지금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 빨간색 옷을 입던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도 파란색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도 파란색의 옷을 입어야만" 비로소 기존의 파란색 사람들과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혹자는 그것을 '인권'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인권이건, 혹은 진보이건 한 가지는 확실하다. "빨간색 옷을 입던 사람들의 문화"는 이제 그 맥이 끊겼다는 것이다.
+오류정정 :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근대 이전에도 동성간에 결혼을 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 정정합니다.
(동성결혼 내지 커플이라고 주장되는 사례들을 보면 많은 경우 "단순히 친한 관계에 대한 과대해석" 문제제기가 따라붙곤 하는데, 찾아보니 일부 "명백하게" 일대일의 의리관계를 동반한 결합이 존재하긴 했더군요. 물론 '흔한' 사례는 아니긴 합니다만 '없는' 사례 인 것도 아니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