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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규정하고픈 마음

현실에선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by 박세환

좀 지난 이야기지만 '조국' 이야기를 해 보자.

당신은 나름의 대의로 조국이라는 사람을 지지했을 수도, 반대했을 수도 있다. 그건 좋다.

문제는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그 마음이 현실을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온다.


한쪽 방향을 정한 사람들에게 종종 나오는 가장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는, 단순히 어느 편을 드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왜곡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실은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반대로 유리한 진실은 수십 배로 과장하여 한 인간을 천사, 혹은 악마로 만들어버린다. 그래, 전에도 이야기했던 신성화와 악마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조국'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그저 한 인간일 뿐. 그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선과 악의, 천사와 악마의 대립 서사에 찌들어있는 이런 사람들이라면 상당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시리아 내전(이제 와서 과연 '내전'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진 잘 모르겠으나…)이라 하겠다.



정말이지 선도 악도 없는 곳이 바로 시리아가 아닐까 한다. 모든 세력들은 각자의 대의 하에 어우러져 끝도 없이 싸우며 지옥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한때는 이곳에도 선과 악의 구분이 있었을 런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한때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이 지옥 속에선 흔해빠진 선악 도식, 그러니까 파랑 옷을 입은 사람은 항상 착하다던가, 주황 옷을 입은 사람은 항상 악하다던가 하는 구분들이 형편없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한국 정치식 선악 구분에 영혼을 빼앗겨버린 이들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현실을 끔찍하게 불편해하는 듯하다. 결국 이들은 시리아를 논하려 할 때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선악 도식을 애써 만들어 부여하고자 한다.(그들이 한국 정치를 논할 때마다 항상 그렇게 해왔듯이.) 어우러져 싸우고 있는 여러 군벌세력 중 특정 세력을 '선'으로, 혹은 '악'으로 규정해서 (조국 사태 때 그러하였듯이) 의도적인 팩트 선별을 통해 그 구려 터진 진영논리, 선과 악의 투쟁 서사를 다시 창조해낸다.


물론 (조국 사태 때도 그러했듯이) 당신이 특정한 이념적 대의에 의해 특정 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과, 그에 맞추어 현실 자체를 선별하고 왜곡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20191112_182154.jpg 쿠르드계 군벌 SDF의 병사들


다들 알겠지만 필자와 같은 경우는 내전 이래로 꾸준히 쿠르드계 세력을 지지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쿠르드는 언제나 선했다."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전&IS전쟁 동안 쿠르드 세력들이 저질러 온 무수히 많은 "읍읍"들 역시도 알고 있다.


대 IS전쟁 중 가장 처절했던 코바니 전투 당시 "당신들 포로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소?"라는 질문에 대한 쿠르드 사령관의 대답은 "적어도 우리는 참수를 하진 않았다."였다. 이것은 무슨 의미?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럼 그 '급박함에 대한 감안'은 어째서 정부군이나 FSA, 극단적 이슬람 반군 내지 IS에겐 적용될 수 없는가?


당신이 누구를 지지하고, 혹은 반대하건 간에 현상은 그저 현상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자신이 현상을 바라봄에 있어 무언가 색안경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든다면, 이를 간단하게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어떤 현상을 평하려 할 때, 잠시 주어와 목적어를 내려놓고 서술어에 집중하도록 해 보자.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어 놓으면 느낌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한번 검토해보도록 하자. 만약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었을 때 당신의 평가 역시도 같이 바뀌었다면, 당신은 상황을 평가함에 있어 무언가 실수를 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내로남불'은 보통 이 검토의 과정을 게을리할 적에 발생한다.


이런 방식의 '검토'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이미 거쳐왔을 미분적분 내지 주기율표 암기보다도 훨씬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어렵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행위를 검토하기 이전에 자신의 영혼을 먼저 검토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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