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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Sep 17. 2020

일본 애니의 타락과 씹덕화

질적 저하

많은 이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떠 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특성에 기인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전형화된 미소녀 캐릭터들을 가져다 놓고 별 다른 개연성도 없이 뻑하면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 덩어리들. 그리고 그런 뻔해빠진 양산형 이야기들을 매번 (작품성이 아닌) '성욕'으로 감상하며 극찬하는 마니아들.


그러나 '일본 애니'와 그 마니아들에 대한 이미지가 처음부터 이러했던 것은 아니다. 


...


'에반게리온'으로 대표될 법한 지난 세기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21C의 양산형 일본 애니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굉장히 심오한 인문 사회적, 철학적 문제의식들을 담고 있었고, 때문에 "잘난 척한다." "스노비즘 저네." "왜 시청자를 가르치려 드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다. 당연히 그것들을 찾아보는 '마니아들'에 대한 이미지 역시 오늘날과 같은 '씹덕'이라기 보단 '잘난 척하는 인문학 인텔리'에 가까웠고 말이다. 



그러면 일본 애니는 언제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오늘날의 그런 이미지로 바뀌게 된 것일까? 개인적으로 아즈망가 대왕을 그 기원으로 본다. 그리고 하루히가 그 변화 기류를 많이 부추겼지.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깔 괴물들이 "오니짱~ 오니 짜응~♡" 해주기만 하면 별 다른 심오한 철학이나 돈만 들어가는 장대한 세계관 따위 없어도 잘만 팔린다는 걸 애니 제작자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제 침체 장기화가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부추긴 측면 역시 없진 않으리라. 


어떻게 보면 자본이 시장의 니즈를 따라가는 것이니 딱히 할 말은 없다만

소위 '마니아'라고 하는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번 바뀌지 않는, 뻔하디 뻔한 양산형 작품들을 매번 그렇게 처음처럼 신기해하며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 


하긴 뭐 한국 가요계 아이돌 시장도...
작품성을 뇌나 심장이 아닌 생식기로 측정한다는 건데 그럴 거면 그냥 폰 허브나 히토미를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아, 다 막아놔서 그런가?ㅋ 



+물론 게 중엔 더러 그렇게 '뻔'하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양산형 씹덕 애니인 척하면서 절묘하게 그러한 세상 세태를 비꼬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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