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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06. 2020

"서부전선 이상 없다."

'그들'의 서부전선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있지만 안전한 곳에서 지휘봉을 들고 있는 사령관들의 입장에선 '수용 가능한 범위'의 물적 손실일 뿐이다. 사령관들은 무더기로 죽어 나자빠지는 병사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본국을 향해 전보를 보낸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이 상징적인 전보 문구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바가 이 한 글귀에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시장주의자들은 언제나 말한다.


"AI가 기존 일자리를 잠식해 들어간다고 난리들인데 그렇다 해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보면 기술의 발전이 많은 일자리들을 없애왔지만 또한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들이 탄생했으며 어떤 식으로 건 사람들은 먹고 살아왔으니까."

"자동차 나오고 말 산업 폭망 했지만 말 산업 종사자들 대거 실업자 돼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이러한 모든 현실 속에~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던가?ㅋㅋ"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나오고 말 산업이 폭망 했지만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았다. AI가 기존의 일자리를 잠식한다 해도 이로 인해 인류가 종말 하는 결과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직업의 세계가 '새롭게 개편'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아주 약간의' 불편함 정도가 있을 뿐이지. '아주 약간의'. 그래, 그 '약간'이 어느 정도의 '약간'일까?



역사란 원래 하찮은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기술발전의 과정 속에서 도태되는 위치에 있었던 노동자 평민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따위에 대해서 '역사'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 기존의 직업군이 상실되었고 글이라곤 제 이름 정도 간신히 적을 줄 알았을 '그들'은 어디로 향하게 되었을까? 도시의 빈민을 거쳐 남편은 전쟁터의 용병으로, 아내는 사창가의 매춘부로, 아이들은 대감님 댁의 시종으로 팔려갔겠지. 그렇게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 아버지는 어느 이름 모를 산하의 얼굴도 모를 고용주를 위해 피 흘리다 불귀의 객이 되는 거고. 전 노동계급 평민들 중 20~30%에게 이런 참극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역사는 그저 "약간의 고통이 있었다."정도로 표현할 뿐. 


높으신 귀족 대감님 두어 명 머리통이 날아가는 참변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역사가 "큰 이변이 있었다."라고 기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가뭄이 들어서 수십만 주민이 굶어 죽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 참극이 횡횡해도 "XX왕 XX 년에 큰 가뭄이 있어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정도로 끝 내는 것이 '역사'다.  



...


시장주의자들은 말한다. 기술발전이, AI의 발전이 기존의 직업군들을 소멸시킨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 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노동계층 사람들에게 "약간의 문제(가뭄이 들어 수십만의 백성들이 굶어 죽는 수준의 '약간의')"가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그들의 서부전선'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그들의 서부전선'에 문제가 없을 때,

'당신의 서부전선'에도 정말 문제가 없을까?


서부전선 사령부의 높으신 사령관 입장에서 '문제'인 것과 

서부전선 진흙탕을 구르는 병사들 입장에서 '문제'인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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