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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14. 2020

월 E의 세상

무능력자들의 천국

일전 가분 씨와 식사를 하다 애니메이션 '월 E'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다.


"월 E에서 보면 모든 일들을 기계가 도맡아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없는 인간들은 기본소득(?)이나 받아먹으면서 놀고먹는 무능력한 돼지처럼 변해버리죠. 그게 제가 꿈꾸는 이상 사회입니다."


이 이야기를 가분 씨가 어떻게 받아들였을 런진 모르지만 아마 많은 이들이 무척 기괴하게 여길 것이다. 그럼 나는 왜 이런 사회를 '이상적'이라 평한 것일까?


...



오래전, 날아라 슈퍼보드의 빌런 '게임의 여왕'을 극찬했던 부분과 연계된다.


사람은 자신보다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인간을 보면 본능적으로 경멸감을 느끼게 되며, 유능하고 쓸모 있는 인간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럼, 무쓸모 히키 쓰레기가 많은 사회는 쓰레기 같은 사회이고 유능한 인간이 많은 사회는 멋진 사회인가?

이를테면 이런 사회는 어떤가? 모든 사람들이 책 한 권쯤은 단기 암기가 가능하고 암산으로 세 자릿수의 곱셈 정도는 거뜬히 해 낼 수 있는 사회.


정보통신 기술이 열악했던 초기 문명사회로 갈수록, 정보 저장 수단의 부재 때문에 정보의 보존과 전달을 개개인의 암기력에 의존해야 했던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사회에는 책 한 권 정도의 정보를 거뜬히 암기해내는 암기 괴물들이 득실대는데 이는 "그런 능력이 없이는 존속될 수 없었던" 사회적 한계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산기술의 부재로 다들 주판을 활용했던 세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이후 세대 사람들보다 암산능력이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란, 결국 "그런 능력이 없이는 존속될 수 없었던 사회적 한계"를 반증한다. 

어떤 사회에 어떤 유 능력자들이 넘쳐난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런 능력이 없이는 살아남기 힘듦"에 대한 반증이다. (교통이 열악한 낙후된 산악지역의 원주민들은 선진국 도시민들에 비해 심폐 활량이 월등이 우수하다. 이들은 그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종종 전쟁터의 용병으로 팔려나간다.) 


...


월E속 세상에선 기계화와 풍부한 복지로 살기가 너무 좋아져 모든 사람들이 배부른 돼지가 되어 버린다. 

 

배부르고 무능력한 이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먹고 싸기나 하는 쓸모없는 인간조차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사회 복지가 잘 되어있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당신은 그런 사회가 싫은가? 혐오스러운가?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어떤가? 거의 모든 국민이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다들 토익 900점에 해외연수 경험에 자격증을 10개씩 가지고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정말이지 유능력 한 국민이 넘쳐나는 멋진 사회가 아닌가?! 이 나라의 국민들은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일벌레인데, 만약 일을 하지 못한다면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한다. 

이들은 그렇게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지치지도 않고 일과 공부에 매진하면서 종종 가족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해져 가는데, 자신들의 절반밖에 일/공부를 하지 않는 선진국의 국민들을 게으르다며 비웃는다고 한다. 자, 당신은 이런 사회가 멋있는가? 부러운가? 


애써 부러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그 사회'의 일원으로써 살아가고 있으니까.


+뉴질랜드의 사람들은 한국인만큼 미분적분을 잘하지 못하며 지식의 량에 있어서도 현저히 밀리는 것으로 보인다. 현저히 밀리지만, 한국인들보다 잘 먹고 잘 산다. 이 사람들이 한심해 보이는가? 이 사회는 열등한 사회인가? 그들은 게으르게 놀고먹는 사회주의 복지의 돼지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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