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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Nov 23. 2020

극렬 진보와 계시 종교

절대적인 완성을 향한 위험한 욕정

종종 빈정거림 섞어서 말하는 부분인데

극단적 계시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지지자와 극렬 진보는 그 정치적 상극성에도 불구하고 종종 유사한 부분을 보이곤 한다. 어떤 절대적 도덕을 향한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아닌 게 아니라 진보좌파진영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기독교스러운 정신세계를 고백(?)하는 모습(실제 신자는 아니라 하여도..)을 접하는 건 진보좌파진영에 발을 담가보았던 이들에게 그리 희소한 경험이 아니다. 예쁜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받는 만큼이나 깨나 자주 접하는 경험이다.

그래, 어떤 절대적으로 정의로운 상태를 향한 갈망. 


(아닌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놀라운 유사성으로 인해, 필자는 개인적으로 유대 문명, 기독 문명, 이슬람 문명, 공산주의 문명을 같은 계열로 분류하곤 한다. 절대주의 계열 문명.)


장단점이 있겠으나 이러한 절대주의적 정서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그 '배타성'에 있다. 절대주의적 정서를 가진 이들은 설령 겉으론 사랑과 민주와 다양성을 말한다 해도 얼마 못가 그 특유의 배타적 모습을 노출해버린다.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면 봐 줄만 하겠으나 지적 수준이 목적지(?)에 대한 강렬한 집착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단순히 한심함을 너머 주변에 실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옛쑤천국 불신지옥!" "너 이슬람 욕했어? 탕탕탕!")


어떤 절대적이고 '희망적인' 종착지를 향한 강렬한 열망은 이들로 하여금 충분한 사색과 고찰 이전에 일단 목적지부터 먼저 설정해버리도록 유도하곤 하는데 어제오늘의 많은 안타까운 사고들은 다 그렇게 초래되는 거지. 

"나는 내가 정의의 투사이길 원한다. 고로 그런 나에게 반대하는 너는 지금부터 악마로 분류돼야 하겠다!"



...


종종 교회 우파와 동일집단으로 분류되곤 함에도 불구하고 대안 우파(전향했지만 여전히 같은 정서를 유지하고 있는 본인 포함)의 정신세계는 이들(계시 종교/극렬 진보)과 분명히 다르다. 오오 정말 다르다.

(대안 우파의 정서는 차라리 자유시장주의자 정서의 기본 베이스와 유사하다.)


이들은 애초부터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세상이 가능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걸 주장하는 이들은 결국 바보이거나 위선자라는 것이 주된 정서상태이다. 

세상이란 결국 아무런 희망도 없는, 죽고 죽이는, 또 그래야만 하는 영원히 저주받은 곳일 뿐. 


이러한 정신상태는 보통 정의니 이상이니 떠드는 자들로부터 배제를 당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를테면


"나는 내가 정의의 투사이길 원해. 고로 나를 빛나게 해 주기 위해 오늘부터 네가 악마 취급을 좀 받아 주어야만 하겠다."

에서 '악마'의 역할로 내 던져졌던 그런 경험 말이다.


"우리는 어떤 이상을 추구해야 하지만 너는 틀렸다."가 아닌

"애초에 어떤 이상 사회 따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틀렸다."라는 결론으로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후자의 사람들은 전자의 사람들에게 거의 생리적인 수준의 혐오를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우파와 대안 우파는 가까워지기엔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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