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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19. 2020

소년이여 야망을 버려라!

공주와 왕자가 백성의 삶을 알까?

나는 아이들에게 "높은 꿈을 가져라!"라 부추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류사회는 피라미드 구조일 수밖에 없기에, '높은 곳'을 허락받게 되는 인생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으니까. 모두가 높은 곳을 원하는 상황에서 도출되는 결과는 더욱 가혹해지는 경쟁과 말라가는 인간성. 그 속에서 죽어나는 약자들일뿐. 


차라리 소수만 높은 곳을 지향하고 다수는 그저 바닥이라도 그러려니 하는 불가 도가적 '게으르고 속 편한' 세상이 더 좋다고 본다.


이 뿐만 아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현실이 앰창이라도 높은 곳에 자아 이입하는 이는 '높은 이'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관점이 하급자가 아닌 상급자를 향하기 때문에 이런 자들에게서 약자 입장의 정치사회관이 나오길 기대하긴 어렵다.


스스로를 앰창으로 인식해야 앰창의 입장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앰창을 위한 이념과 사상을 찾게 된다.

자기를 찐따라 인식해야 공주왕자님이 아닌 찐따의 입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공주 왕자로 설정한 뒤 '시혜적 관점'으로 낮은 이들을 챙기려는 이들의 담론엔 어딘가 항상 구멍이 나 있다. 때문에 난 '시혜적 관점'으로 '낮은 이들을 위한 사회'를 외치는 이들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공주 왕자님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들의 사회인식은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더라. 아주 일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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