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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02. 2024

뤼지냥의 기

인생은 '기'완용처럼

오랫만에 역사 이야기 한 점.

십자군 전쟁과 영웅 발리앙 이야기를 다룬 '킹덤 오브 헤븐'에는 '기'라고 하는 변변찮은 인물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기도 하다. 얼마만큼? 이완용만큼ㅋㅋ

그래서 오늘은 이 사람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기는 원래 프랑스 지역 영국 국왕 영지에서 살던 건달이었는데 하도 쓰레기 짓을 많이 해 당시 영국 국왕 리처드(사자왕)의 분노를 샀고 결국 추방된다. 추방되고 갈 곳이 없으니까 예루살렘 십자군 왕국으로 이주했는데 여기서부터 그의 (타인을 망치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운빨 인생이 시작된다.


당시 예루살렘 왕국을 다스리던 나병 왕 보두앵 4세는 기어오르는 대 귀족들을 견제할 도구로 쓰기 위해 위해 예루살렘으로 굴러들어 온, 외모 하나만큼은 기갈났던 이 '기'를 자신의 누이 시빌라와 혼인시켰고 이후 막강한 권한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내 '기'가 얼마나 병X인지 깨달은 왕은 기의 권한을 박탈하였으며 누이 시빌라와도 강제이혼을 시도하는데 나병으로 인해 원체 몸이 좋지 않았던 보두앵 4세가 병사함으로써 '파혼'은 없었던 일이 되고야 만다.(기에겐 천만다행. 예루살렘 왕국엔 절대 불행) 


보두앵 4세의 서거 이후 어린 보두앵 5세가 계승하였으나 이 역시 몸이 좋지 않아서 얼마 못 가 사망. 이 상황에서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시빌라 왕녀였고 기는 그런 시빌라의 남편. 

일찍이 기라는 인물의 문제성을 잘 알고 있었던 왕국의 신하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좋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에게 만은 권력을 넘겨주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함께 시빌라를 여왕으로 추대하였으나 여왕이 된 시빌라는 보기 좋게 남편 기를 공동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신하들, 더 나아가 왕국민들에게 빅 엿을 선사한다.

그리고 마누라 잘 둔 덕에 왕이 된 기는 전군을 이끌고 살라딘과 전쟁을 하러 떠난다.



기와 전쟁을 하러 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출동한 이슬람의 수장 살라딘. 근데 와서 보니 이게 웬걸? 적진을 둘러보는데 서플라이 디폿 배치 상태도 이상하고 배럭 짓는 상태도 이상하고 적군 본진 심시티가 뭔가 다 이상해. 너무 허접스러워서 "이거 적의 계략 아닐까?" 한동안 고민하다 결국 어택땅을 찍어보았다.

(참고로 살라딘은 예루살렘 왕국의 선대왕 보두앵 4세에게 영혼까지 털렸던 적이 있었다. 당시 보두앵 4세의 나이 16세. 보두앵이 나병으로 몸 상태가 나쁘지만 않았다면 살라딘은 그때 이미 저승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기의 군대는 이 어택땅 한방에 물 쓸려나가듯 쓸려나간다.




예루살렘 왕국의 전 병력을 한타로 쓸어버린 살라딘. 그는 기를 사로잡았지만 딱히 칼을 더럽힐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 생각해 죽이진 않고 담당 일진 놀이나 하면서 가지고 놀다가("여기 오백 원 줄테니까 딸기우유랑 빵 하나 사고 천 원 남겨와라.") 그 마저도 지루해질 즈음 유기견처럼 기를 '유기'했다.

살라딘에게 '유기'된 기는 예루살렘 왕국의 남은 영지 중 하나인 '티레'로 가(이미 수도 예루살렘은 살라딘에게 작살난 지 오래) 왕이 돌아왔으니 받아들이라 외쳤으나 이미 그에게 있는 데로 학을 땐 티레의 신하들은 "너 같은 개병X을 왕으로 둔 적 없으니 저리 꺼져라 그지새꺄!"라 화답했고 결국 기는 오도 가도 못하는 거지 신세로 일대를 배회. 하지만 이번에도 하늘은 (예루살렘 왕국이 아닌..) 그의 편이었다. 마침 그 일대를 지나가던 리처드 왕 3차 십자군의 눈에 띈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으나 불쌍한 예루살렘의 왕이 신하들에게 무시와 천대를 받고 있더라."


결국 기는 3차 십자군을 따라다니며 그럭저럭 연명하는 듯했는데 또 한차례의 불행이 닥치게 된다. 

기가 가진 '왕'이라는 직함은 공식 여왕인 시빌라의 남편이자 차후 권좌를 이어갈 두 딸의 아버지라는 명목으로 유지되는 타이틀이었는데 그간 가족들의 고생이 심했는지 아내와 두 딸이 한꺼번에 병사해 버리는 참극이 벌어진 것. 이때를 놓치랴! 예루살렘 왕국의 잔존 세력들은 가다렸다는 듯이 시발라의 여동생 이사벨을 새 여왕으로 추대해 버린다.("이제부터 이사벨이 우리의 여왕. 그러니까 기 병X은 더 이상 너무 인생 X 되게 만들지 말고 제발 꺼져주세요.")


기의 운빨도 이렇게 끝났을까? 당연히 아니지ㅋ 기를 데리고 있던 사자왕 리처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기를 계속 왕으로 밀어주었다. 결국 기는 왕 대접을 계속 받는 거고 안 그래도 똥망 트리를 타던 예루살렘 왕국은 머리가 둘로 나뉘어 더 급속한 똥망의 길로 들어서는 거고ㅇㅇ





십자군 원정과 예루살렘 왕국의 운명은 모두가 알고 있는 부분. 리처드 왕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왕국은 복원되지 못했다. 자, "예루살렘 왕국 명목상의 국왕"이라는 타이틀로 간신히 연명해 가던 기의 운명은? 

사자왕 리처드는 기의 운명이 불쌍했는지 기를 자신의 영지로 남아있던 키프로스 섬에 군주로 책봉해 주었고 기는 거기서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천수를 다 하고 죽게 된다. 


기의 등극을 죽도록 막으려 했던 보두앵 4세 : 죽도록 막으려 했는데 못 막아서 으앙 쥬금

기의 병사들 : 하틴 전투에서 몰살 

기의 왕국 : 똥망

기의 아내 : 고생만 하다 사막에서 병사

기의 두 딸 : 역시나 엄마 따라 사막에서 객사


기 : 평생을 왕으로 호의호식하고 대접받으며 살다 천수를 누리고 침대에서 죽음


실로 기완용이라 칭할 만큼 훌륭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이만한 삶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근데 애초에 기를 영지에서 추방해 예루살렘으로 보내서 이 모든 불행을 자초한 게 무슨 왕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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