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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29. 2020

박세환의 선대(신좌파)에게 보내는 편지

이해는 해도 용서는 못한다

*과격한 논조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살포시 뒤로 가기를...

혹자는 필자가 논리적 정합성에 대해, 주장의 합당함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기성 보수, 페미니즘, 신좌파, 자유시장 등등 다른 사상들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까다롭게 군다고 여길는지 모르겠다.

설령 결함이 있는 주장, 사상이라 해도 신봉자들 입장에선 "그것이 옳다."라 여기게 된 그들만의 삶의 맥락이 있지 않겠느냐고.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해는 할지언정 용서는 못한다!"

...


일 년 전 즈음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정치 사회적 논의의 장에 펼쳐지는 거의 모든 주장들은 어떤 식으로 건 선과 악을, 정답과 오답을 나눈다. 예를 들어 "빨간색 옷을 입어선 안된다."라는 '정치 사회적 주장' 이 있다고 치자. 이 주장의 존재로 인해 세상은 빨간 옷을 입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누어지게 되며 게 중에서 빨간색 옷을 입는 이들은 좋든 싫든 악으로 지명된다. 그리고 악으로 지명된 이들은 어느 정도 소정의 상처를 입게 되지. 고로 대부분의 정치 사회적 주장들은 어떤 식으로선 타자에 대해 공격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공격성의 강도는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세상에 거의 몇 사람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악으로 지명하는 어떤 정치 사회적 주장이 존재한다 해도 그 지명된 이들은 별 큰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장'이 정치 사회적 흐름을 잘 타서 주류 패러다임으로까지 격상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악으로 지명된 이들은, 그러니까 빨간색 옷을 입은 이들은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 이즘 되면 사회적 스피커들(언론, 문학, 예술, 교육, etc)을 통해 단순히 죄의식을 주입받는 정도를 너머 물리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압박까지 겪게 될 것이다.("저 새끼 저거 빨간 옷 입었다! 미친 거 아냐?" "너 10초 내로 그 옷 안 벗으면 험한 꼴 보게 해 줄게.") 


...


사람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해 그 자체만으로 상처를 받진 않는다. 사람은 그 피해 자체보단, 종종 그 피해가 정당했는지 여부를 무척 많이 따지는 생물이다.("나한테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왜 내게 이런 일이...!!") 상처의 강도는 그 '정당성 여부'에 의해 많이 달라진다.  


"빨간색 옷을 입는 행위는 죄악"이라는 명제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경우와, 그저 '빨간색 옷'이라는 대상에 대한 감정적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이들의 헛소리 정도로 여겨질 경우, '빨간색 옷을 입는 이들'이 받는 상처의 강도는 현저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엔 자신들에게 내려지는 사회적 압박과 타격들을 마치 판사의 공정한 판결처럼 수용하려 할 것이다. 혹자는 자신의 빨간 옷을 벗으려 할 것이고 그게 정히 힘들 경우 조심스러운 타협을 시도해 보기도 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엔 오직 가해 집단에 대한 증오, 원한만 쌓이는 거고



...

박세환이 '빨간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신좌파들에게 공격받았을 때, 박세환을 분노케 한 건 그 공격의 강도가 아니었다.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그 논리체계에 너무나 많은 결함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결함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그들이 지닌 문화적 권력으로 인해 그들은 거의 어떤 비판도 받지 않았다는 게 빡침의 주된 이유였다.


그들이 어떤 삶의 연유로 '빨간색 옷'을 증오하는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내가 감안해 주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상처를 받았고 '빨간색 옷'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했을지 여부 따위 내 알바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런 너희들에게'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이며, 니들이 어떤 잘난 피해 서사로 상처를 처 받아오셨건 간에 박세환이 그런 너희의 감정 쓰레기통 재물로 받쳐져야 할 정당한 이유 따윈 없었다는 것이다!



'너희의 피해 서사'는 이미 너무나 많이 들었다. 질리도록 들었다. 

이젠 '그런 너희'에게 피해를 받은 이들의 피해 서사들이 울려 퍼져야 할 차례이다.  

너희가 어떤 인생 맥락 속에서 어떤 상처를 받아왔건, 그런 너희에게 짓밟힌 이들도 있었음에 대해서 너희는 사죄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겠다면?
'새로운 피해 서사들'이 '과거의 피해 서사들'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목덜미를 물어뜯고 사지를 찢을 것이다. 피가 강이 되어 넘쳐흐를 것이다.
과거 너희가 너희 선조들에게 그러했듯이. 


 +그런 패턴이라면 '박세환의 피해 서사'역시 '후대의 피해 서사'에게 처단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기꺼이! 후대가 선대에게 죄를 묻고 또 그 후대가 선대를 응징한다. 그리고 그렇게 끝없이 흐르는 피의 강.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발전'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대' '후대'가 개개인 그 자체를 언급하는 단순한 세대론이라 여기는 우를 범하진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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