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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14. 2021

아더왕과 알프레드 대왕. 그리고 민족의식 1

민족주의

로마군이 브리튼 섬(오늘날 영국)에서 철수한 뒤, 섬은 앵글로-색슨족의 거센 침략을 받았다. 브리튼 인들은 전설의 아더왕 아래 단결하고 저항해 한동안 앵글로-색슨 침략자들을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한 두 세기가 지난 뒤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앵글로-색슨이었다. 살아남은 저항자들은 웨일스 지방으로 달아났고 그 밖의 브리튼 인들은 침략자 앵글로-색슨에 동화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얄궂게도, 침략자이자 승리자였던 앵글로-색슨 역시 바로 자신들이 몰아낸 패배자 브리튼 인들과 똑같은 운명에 놓이게 된다. 데인-바이킹족의 거센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앵글로-색슨족은 위대한 알프레드 대왕 아래 단결하고 저항해 한동안 데인-바이킹 침략자들을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한 두 세기가 지난 뒤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데인-바이킹이 이었다.(위대한 데인 왕 크누트 시대) 


(너무나 유사한 반복이라 중국 하나라 역사와 더불어 아더왕 이야기는 호사가들이 알프레드 대왕의 역사를 복제해 만들어낸 허구의 역사라는 가설도 존재한다.)


너무나 유사한 두 종족,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역사는 달랐다. 앵글로-색슨에게 패배한 브리튼 인들은 지배자의 정체성에 동화되어 고유의 정체성이 거진 소멸되었지만 데인족의 지배를 받은 앵글로-색슨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지켜내었다.(지배자인 데인인이 패배자인 앵글로-색슨에게 동화된다.) 이러한 차이는 어떻게, 왜 나타난 걸까? 여기서 난 아더왕과 알프레드 대왕의 '레베루'차이를 느낀다.


...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유추해 보건대 아더왕의 군재는 알프레드 대왕의 그것과 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물리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을 너머, 문화 관념적인 가치에 대한 이해도에서 둘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던 것 같다.


알프레드 대왕은 단순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걸 넘어 문화 관념적인 가치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그리고 당시만 해도 다소 망상에 가까웠던 '통일된 잉글랜드 민족의식'이라는 자신의 꿈을 문자로 남기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전파했다. 다른 나라보다 수 세기 앞서 '민족주의'라는 문화 관념(?)을 개발(?)해 낸 것이다! 

때문에 이 '민족주의'를 전파받은 그의 국민들은 계속되는 침략-압제자의 횡포 속에서도 "우리는 위대한 알프레드 대왕의 후예 잉글랜드 민족! 적들의 가혹한 압제 역시 결국엔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고 결국 '잉글랜드'와 '잉글리시'라는 정체성을, '앵글로-색슨계'라는 정체성을 오늘날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잉글랜드 : 앵글로-색슨의 땅)   



반면 아더왕은 몇 번의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을지언정 알프레드 대왕만큼 '문화 관념적 가치'에 까지 관심을 두었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의 영향으로 라틴어식 문자 체계를 분명 접했을 텐데도 자신과 브리튼 인들의 저항정신을 다룬 그 어떤 문자적 기록도 남기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아더왕과 브리튼 인들의 저항은 실재 하는 문자 기록이 전무한 체 구전으로 전승될 수밖에 없었고 그 민족정신(?) 역시 알프레드 대왕의 잉글랜드인들에 비해 상당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종적 패배가 있은 후 대부분의 브리튼 인들은 지배자의 통치를 무력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해 버렸다.


아더왕 역시 알프레드 대왕처럼 문자 기록을 남겼으나 압제자의 억압 때문에 전승되지는 못했다는 식의 가설은 무의미하다. 잉글랜드 점령 후 구전에 자신들의 색체를 입히는 식으로까지 아더왕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던 앵글로-색슨인들이 애써 아더왕에 대한 문자 기록을 없애려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설령 승리한 앵글로-색슨족이 자신들의 적이었던 아더왕에 대한 기록에 손을 대려 했다 해도 아더왕의 주 영역이었고 오늘날까지 '잉글랜드'라는 이름으로는 복속되지 않은 웨일스 지방에는 아더왕의 역사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아더왕은 설령 그 존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알프레드 대왕과는 달리 문자 기록을, 그 문자 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고레벨의 민족주의 문화 관념을 만들어내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앵글로색슨 민족주의 생성'이라는 알프레드 대왕의 위업은 데인-바이킹 이후 노르만-프랑스 점령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to be continue



+딱히 이념으로써 민족주의 사상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어떤 특정 문화/관념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기술적으로 논해보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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