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May 12. 2021

비록 나치라 할지라도

주님의 나라를 그대들에게

100여 년 전부터 진보좌파와 파시스트는 적대적 관계였다.

파시즘은 진보좌파가 싫어하는 그 모든 것들을 상징했다. 반 여성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본과 결탁, 민족주의(이 부분이 이상하게 느껴지신다면, 한국의 좌우 기준이 촘 이상한 거라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등등.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신좌파운동이 근대와 모더니즘에 대한, 그리고 파시즘에 대한 안티테제를 철저하게 자처했던 건 달리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진보좌파들은 언제나 그러했듯 68 신좌파 혁명 이후에도 자유와 평등, 사랑과 평화 등 온 가지 좋다는 미사여구는 다 달고 살았으나 그들이 악으로 분류한 집단들(여성의 대립항으로써 남성/ 이슬람의 대립항으로써 기독교/ 저항자의 대립항으로써 모범생/ 청소년의 대립항으로써 어른/ 사적 질서의 대립항으로써 공적질서/ etc...)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외가 적용되었다. 그들은 강자이며, 역사적 원죄가 있는 죄악의 영역이니 그들에겐 그 좋다는 사랑도 평화도 자유도 평등도 조금씩은 열외 되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그 모든 악의 중심엔 언제나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파시즘과 파시스트가 있었다.



...

21C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진보좌파 사회라는..) 북유럽에서 일어난 일부의 변화들은 참 인상적이었다. 나치를 연민하고 동정하는 움직임들이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진보적인' 북유럽인 들은 대전 이후 리벤스보른(나치의 우생학적 집착이 만들어 낸 우수 아리아인 혈통) 아이들이 평생 동안 왕따로 살아야만 했음에 대해 미안해하기 시작했다. 대전 이후 전후 복구작업에 어린 나치 포로들을 노예처럼 동원했음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영화도 만들었다.



...

진정한 민주와 진보를 말하는 이라면, 사랑과 평화를 진정으로 주장하며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그 가치는 가장 사악하고 혐오스러운 적들에게 역시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지 않았던가? 자유니 인권이니 온 가지 미사여구를 떠들어대면서도 그것을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소수의 이웃에게만 적용시킬 생각이라면, 그것이 제대로 된 휴머니즘인가? 그것이 본질적으로 우리가 비난했던 파시스트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 만을 사랑하려 한다면 이는 강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 예수) 


우리가 '그들'의 악을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그들과 달라야만 한다. 

가장 사악하고 비열했고 더러웠던 그대들에게도, 그대들에게 조차도 우리는 우리가 숭고히 하는 그 가치들을 전달하겠다.
적들에게 인권과 평등과 자유를, 사랑과 평화를, 연민을, 그리고 휴머니즘을.

북유럽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듯 하다.


자, 당신은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험한 대안 우파적 기류인가? 극우 부활의 불순한 단초인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
여성의 대립항으로써 남성에게도.. 

이슬람의 대립항으로써 기독교에게도.. 

저항자의 대립항으로써 모범생에게도..  

청소년의 대립항으로써 어른에게도..  

사적질서의 대립항으로써 공적질서에게도.. 





 

 


작가의 이전글 페미 앞에만 서면 약해지는 민주진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