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May 16. 2021

아더왕과 알프레드 대왕. 그리고 민족의식 2

노르만 침공

영국 침공의 끝판왕이었던 노르만의 침공은 그 이전 앵글로-색슨 내지 데인-바이킹의 침공과는 본질적으로 격이 다른 사건이었다.


노르만이라고 하면 보통 바이킹계 야만족을 떠올리기 쉽지만 11세기의 프랑스 노르만은 조상만 바이킹일 뿐 실제론 오래전부터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어 있던 프랑스인이었다.(노르망디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을 애써 '바이킹 계열'이라고 수식하진 않잖아?) 그리고 중세시대엔 섬나라 촌구석이었던 영국보단 프랑스가 문화적 측면에서 훨씬 앞서있었고 말이지.

다시 말해 노르만의 영국 침공은 고등 문명국이었던 프랑스의 침공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복자 윌리엄(1028-1087). 영국을 정복한 후 윌리엄 1세로 등극한다.


노르만-프랑스인은 모든 면에서 앵글로-색슨을 압도했다. 

이전(앵글로-색슨 침공&데인-바이킹 참고)과는 달리 노르만-프랑스를 상대로 한 수세기에 걸친 저항과정 따윈 없었다. 앵글로-색슨인들의 주력이 헤이스팅스 전투 한방에 깔! 끔! 하게 갈려나갔고 그 뒤에 몇 번의 '개김' 역시 정복자에게 흠집도 내지 못한 체 쓸려버려서(이 과정에서 노섬브리아의 앵글로-색슨족이 귀족, 평민 할거 없이 평등하게 갈려나간다.) 저항을 지속하고 자시고가 없었기 때문에. 노르만-프랑스인들은 전투 몇 번으로 전 잉글랜드를 가볍게 집어삼켰다.


침공 당시의 앵글로-색슨이나 데인-바이킹은 문명화된 이들이 아니었지만 노르만-프랑스인들은 영국 본토인을 능가하는 문명인들이었다. 이들에게 군사적으로도, 정신문화적으로도 딸리니 프랑스 문화의 영국 침투가 본격화되는 건 시간문제.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르만-프랑스 이전의 순수 앵글로-색슨 문화라는 건 너무나 심각하게 오염(?)되어 버려 더 이상 순수했던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영어만 해도 전체 어휘의 80%가 프랑스어에 의해 오염(?????)되었다. 웃기는 건 그 '프랑스화 된' 영어가 고급 영어이고 순수 영어가 하급 영어였다는 것. 오늘날까지도...("아임쏘리~" vs "아이 아폴로자이즈 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그래도 "앵글로-색슨의 잉글랜드"라는 민족 정체성만큼은 끝까지 지켜 내었다는 점이다. 저항이 무의미하게 쓸려나갔을 정도로 노르만 왕들의 통치가 굳건했음에도 이번에 역시 최후에 동화된 건 지배자 노르만이었지 피 지배자 앵글로-색슨이 아니었다.  


아무리 문화적으로 동화시켜 보아도 "곧 죽어도 우리는 잉글랜드인!"이라는 민족적 정체감만은 없앨 수 없었다. 결국 영국의 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우리는 프랑스인이 아닌 영국(잉글랜드)인이다."라고 말하게 된다.(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나지 않는데 조선총독부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우리는 천황폐하의 신민이 아닌 조선인"이라고 말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전술했듯 그러한 지독한 민족의식의 시작이 알프레드 대왕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역사에서 문화적&군사적으로 더 우월한 지배 민족이 더 열등한 피 지배 민족에게 역 동화된 사례 얼마나 있던가?

+"노르만 정복은 사실상 프랑스의 영국 점령. 중세 영국은 프랑스의 식민지^^" 

이 주문은 영국인에게 "다케시마와 니혼 땅이데스."와 비슷한 느낌의 효과를 낸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더왕과 알프레드 대왕. 그리고 민족의식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