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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18. 2021

머릿수 군대 VS 소수 정예

소수정예론은 정말 시기상조인가?

21세기가 시작될 때 즈음 기계화 소수정예 만능론이 돌았더랬다. 저급 백만 대군보다 최신 터미네이터 1 만기가 낫다는 식의 이야기.


이 '기계화 소수정예론'이 한풀 꺾이게 된 계기가 바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었다. 그간 '기계화 소수정예'에 집착했던 미군이 막상 이라크를 점령하고 나서 극도의 병력 부족 현상을 겪었던 것이다. 미군이 파병한 20여만의 군대로는 치안이 막장으로 치닫는 이라크의 모든 영역을 제대로 통제하는 게 불가능했다. 


여기저기서 난동을 부리는 각종 게릴라 반군들에 시달리던 미군은 2009년 이라크 정부에 전권을 이임한 뒤 사실상 쫓기듯이 미국으로 귀환해야만 했고 이라크는 그 뒤로도 계속 혼란이 이어지다 2014년 즈음 해선 IS라는 끝판왕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라크의 참극을 보라! 소수정예론은 시기상조이다. 아직은 다수의 머릿수 싸움이 유효하다!"

정말? 정말 미국의 이라크 실패는 소수정예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나?

...


토탈워나 삼국지류의 통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 보면 알 것이다. 당신이 통치자로서 통치를 잘하고 있으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병력은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요순시대. 대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도 아무도 도둑질하러 오는 이가 없더라..) 반면 당신이 나라 관리를 개판으로 하면 나라의 공공질서, 치안도가 막장으로 치닫고 수시로 반란군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이를 통제, 제압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병력이 필요하게 된다.


비워진 도시나 마을이 있을 경우 1 턴만 지나면 바로 반란군이 생성되기 때문에 모든 도시와 마을에 상당량의 주둔군을 배치해야만 하는데 필요한 병력 수라는 건 당신의 통치 막장도와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 백만 대군이 필요할 수도, 이백만 대군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물론 폭증하는 유지비는 덤. 이 유지비를 구하기 위해 백성을 더욱 쥐어 짤 수밖에 없게 되고 '백성 불만 증가 - 계속되는 반란'이라는 끝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만약 당신이 이 수라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게임을 던졌을 경우, 당신의 패인은 '병력 부족'인가? 당신이 백만으로도 부족했던 통치, 누군가는 삼십만으로도 해결하는데?


이건 병력의 실패가 아니다. 통치의 실패, 정치의 실패인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미군정이 겪었던 과정이 이것과 거의 유사했다고 보면 된다.


...


오늘날까지도 화자 되는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의 이라크 미군정은 통치가 어디까지 막장일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주었다. 통치가 너무 막장이니 많은 이라크인들은 "차라리 후세인이 그립다!"며 각종 반군을 만들어 이라크 전 지역에서(쿠르드 지역 빼고. 미군의 동맹이었던 쿠르드 지역은 자체적인 통치시스템이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 막장 통치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저항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실패를 통치 실패가 아니라 병력 부족이라고 말할 거야?  


통치 실패에서 오는 병력 부족을 정말 병력 부족 그 자체의 문제라 한다면, 필요한 병력의 한계선은 끝이 없다. 2차 대전 소련군 수준으로 마구 징발해서 점령지의 모든 국민을 1:1로 감시하지 않고서야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침공군으로써 미군의 역할은 이라크 기존 정부(후세인)를 잘 때려 부수는 것이었고 사실 이 부분은 잘해 내었다. 그럼 거기까지로 된 거다. 미군의 병력은 충분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후 미군정 단계에서 요구되는 건 "통치를 잘해서 반란이 안 일어나게 하는 것"이지 "막장 통치로 사방팔방에서 반란군이 생성되게 하고 이걸 병력 빨로 다 찍어 누르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머릿수 만능론은 필연적으로 군 지도부의 사적 필요에 의해 유지된다. 간단하게, 머릿수가 더 적어지면 장교와 장군의 수 역시 줄어들어야만 하니까. 어느 장군이 이를 반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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