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Jul 19. 2021

송나라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일개 천재'의 주도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종종 동양 우월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국에선 이미 송나라 시대 때 증기를 동력으로 기계를 돌리려던 시도가 일어났고요. 한국만 해도 임진왜란 때 비행체를 뛰어서 일본군을 전략 폭격했다는 기록(믿기지 않겠지만 일단 사실이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이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 초등학생 때 전교 1등 하셨다고요? 그래서요? 깔깔깔깔..


근대 서양 기술문명의 혁신이 오직 '제임스 와트'라는 천재에 의해 '우연히'일어난 거라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는 저런 언사가 먹힐지 모르겠다. 물론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근대 서양의 기술문명은 결코 "운 좋게 태어나진 몇몇 천재들의 주도로"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

온라인 상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로 '병X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게 있다. 모든 집단엔 항상 동일한 비율의, 좀 모자란 인간들이 존재하기에, 아무리 피하려 해도 반드시 일정량의 병X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천재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백 명이 있고 그중 하나가 병X이라면, 그중 한 명 정도 천재가 있기도 하다.


당연히 동양에도 무수히 많은 천재들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 기록에도 그런 신기한 인간들이 드문드문 나온다. 중요한 건 서양과 달리 동양에선 그런 천재들의 능력이 학술화, 체계화되어 계승 발전되지 못했고 당사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거지.


천재가 태어났다고 해서 바로 그게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천재를 알아보고 대접해 주는 사회 체제가 아닐 경우 천재성을 드러내 봐야 이득이 없거나 아예 위험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실제 전근대 시절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범한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뜻을 미처 펴 보지도 못한 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령 위험에 빠지지 않았다 해도 남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경우 역시 흔했고.


간단하게, 철갑선 만들었다는 이순신부터 그 삶이 어떠했던가? 그 기술이, 그 능력이 계승/발전되었나?



동양 고전에서 천재들은 보통 어떻게 나오던가? 
산속 골짜기 깊은 곳엔 숨어 사는 은둔 고수가 있어 그 비기를 숨겨놓고 있나니, 이를 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 거처를 말하지 않는다더라. 그 비기를 기어이 배워오겠답시고 한 청년이 이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는데 10년 동안 허드렛일만 시키고 비법은 알려주지 않았다더라.


"스승님. 저는 스승님의 비기를 알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건만 어찌하여 제게 가르침은 주시지 않으시고 매번 허드렛일만 시키시나이까?"
"어허, 진정한 기술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야! 네가 말하는 그 허드렛일이 바로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고 말이다. 너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라ㅉㅉ"

그렇게 간만 보다 어느 날 갑자기 스승이 죽어버리면 그 비기는 영원히 소실되는 것이고 말이다..


...

서양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수한 동양의 은둔 고수들이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내 보일 기회조차 없이 간만보다 이승을 하직해 갈 동안, 서양인들은 그 능력과 지식을 충분히 대접해 줄 수 있는 사회체계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임스 와트 같은 천재들도 비로소 '알아볼' 수 있게 된 거고(절대 갑툭튀 한 게 아니다.) 그들을 대우해 주면서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서양문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니 "쫌만 더 공부했으면 나도 서울대 갈 수 있었어." 식의 하소연은 이제 그만 하도록 하자.





작가의 이전글 여가부 폐지 100분 토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