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거짓말
스타크래프트2를 보면 '원시저그'라는 무리가 나온다.
초월체(오버마인드)에 복속되기 이전의 특성을 끝까지 유지해온 제루스 행성의 정통 저그로, 개별 개체의 독립성을 유지한 체 서로 끝없이 경쟁하고 잡아먹으며 진화-발전해 나아간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 일반적인 생태계와는 분명히 다르다.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는 개체들은, 아무리 강한 맹수라 해도 배때지 크기의 한계로 인해 잡아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며 상대를 잡아먹는다 해도 잡아먹은 만큼 힘이 더 세진다거나 능력이 새로 생기거나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늙어 죽는다.
반면 원시저그의 설정은 자연 생태계 라기보단 자유시장경제에 더 가깝다. 서로 경쟁하며 강한 개체가 약한 개체를 잡아먹는다는 설정까진 지구 생태계와 비슷하지만 잡아먹을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없으며, 상대를 잡아먹을 때마다 힘과 능력치가 그만큼 상승한다는 설정에 있어서 원시저그의 개체들은 시장의 자본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여기서 의문. 그렇게 끝없이 서로 잡아먹다 보면 결국 두각을 보이는 강력한 한 개체가 다른 모든 약한 개체들을 집어삼켜 먹어버리거나 다른 이들을 모두 발아래 종속시켜버림으로써 모든 경쟁을 종결지어야 자연스럽지 않나? "잡아먹은 만큼 더 강해진다"는 특성 때문에 한번 두각을 나타낸 개체는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질 테니까.
설정상 제루스 자유경쟁시장의 정점에 오른 거대 자본(??) 주르반은 어째서 다른 모든 자잘한 원시저그 자본(?)들을 M&A로 소멸시키지 않고 놔둔 체 잠만 퍼 자고 있는가? 만약 주르반이 보다 공격적이어서 모든 원시저그 시장을 통폐합하려 했다면, 다른 원시저그 개체들은 속절없이 흡수당했거나 주르반을 최종 절대군주로 모심으로써 그들이 비난(?)했던 오버마인드 공산주의(?) 저그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전환되어 버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필연적인 몰락이 나타나지 않은 건 특정 시점에서 이유 없이 사냥을 멈추고 잠만 잠으로서 다른 개체들의 생존과 독립성을 보장해 준 주르반의 개인적 자비심(???)이었을 뿐.
만약 두각을 나타낸 특정 개체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낀 다른 약한 개체들이 거대한 조직을 형성해 이에 맞서려 했다면(카르텔), 이 역시 '원시저그의 개별성'이라는 특성을 희석시켜 버리는 결과 이게 된다. 개별 개체의 자율성이 희석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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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반복하는 말이지만, 지구의 생태계는 어디까지나
1. 아무리 사자라도 잡아먹을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존재하고
2. 아무리 잡아먹어도 육체적 힘이 강해지는 정도에 제한이 있으며
3. 아무리 날고 기어도 특정 시점이 되면 늙어 죽어야 한다는
조물주의 제한사항이 있었기에 균형을 이루며 유지가 가능했을 뿐이다.
강자가 잡아먹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없고 수명도 없으며 심지어 잡아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어떤 생태계가 있다면, 여기에 사회주의적 정부 개입은 필수이며
역설적으로 이 사회주의적 개입이 생태계를 유지 존속시켜주는 필수 불가결한 장치가 되는 것이다.
+블리자드에 자유시장 신봉자가 있어서 자유시장을 그 자체로 이상적이고 완벽한 생태계로 표현하려 했다는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