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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05. 2021

오징어 게임

자유시장 공정경쟁

사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아주아주 특이한 건 아니다. 이런 류의 살인게임 장르 영상물은 외국엔 전부터 있었는데 다만 한국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시도했던 건 좀 특별하다 하겠다.


몇 가지 차이점들이 있겠지만 이런 살인게임 장르 영상물에서 많이 공유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일단 '살인게임'이라는 설정은 경쟁과 약육강식을 강조하는 우파 사상에 대한 은유로 많이 등장한다. 어떤 비밀스러운 최상급 부자 귀족 내지 베일에 가려진 프리메이슨스러운 집단이 이런 게임을 진행하고 통제하는데 이들은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쥐어주고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며 탈락된 이들이 '공정하게' 죽어가는 상황을 아주 이상적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지독한 우파 신념자인 경우가 많다.


이런 장르물의 미학이, 진행자는 단순하게 피에 굶주린 살인귀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든 진행자는 자신만의 신념이 독립운동가처럼 확고한 신념가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땐 반드시 공정하고 특정한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 아비규환의 혼파망 추구가 아니다!



(좌파경제 추구자로서 자유시장을 까는 건 대체로 좋아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엄밀히 말하면 게 중에도 틀린 비판은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자유지상주의는 결코 아무나 찔러 죽이는 혼파망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유지상주의 출신 좌파 전향자로서 말하건대, 자유지상주의 세계에도 분명한 규칙은 있다. 이를테면 타인에 대한 폭력과 강요는 자유지상주의 이상 사회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철저하게 자율의지에 기반한 자유거래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종종 이런 식의 절차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어차피 너네들 다 피에 굶주린 살인귀인데 아닌 척하는 위선자에 불구한 거 아니냐고 소리치며 모든 규칙을 파괴하고 혼파망을 일으키려는 캐릭터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대중의 오해를 반영한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은 대게 진행자들에게 제압되며 이 과정에서 "신사숙녀 여러분. 우린 결코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아닙니다. 진정한 공정경쟁 세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들입니다." 따위의 대사가 등장한다. 


어차피 사람 죽이는 놈들인데도 이상하게 규칙과 공정 절차에 집착하는, 규칙과 절차에 집착하지만 패배자의 목숨 따위는 파리 목숨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진행자들의 이상한 도덕관은 이 살인게임 장르만의 독특한 미학이며, 시장 경쟁체제에 대한 시니컬한 은유.


그밖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처절한 상황인데도 주변을 알록달록 애들 놀이터 같은 꽃밭으로 꾸며놓는다던가 사람을 죽이면서도 규칙 안에서 만큼은 이상하게 친절한 진행자들의 태도, 승리한 강자에겐 깍듯이 예우를 갖추는 모습 등. 이 모두 자유시장체제에 대한 은유이다.  



...


다만 오징어 게임만의 독특한 설정 역시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이 아닌 다른 살인게임 장르에서 '공정한 규칙과 절차'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수되는 편인데 '오징어 게임'에서만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 참가자와 진행관들이 결탁해서 게임 내용을 유출하는 설정도 나오고, (위에서 비판한) 단순한 폭력 유혈사태 혼파망까지 벌어지는데 진행자들이 의도적으로 이를 방치한다던가 하는 부분들 말이다. 


살인게임의 공정하고 철저한 규칙과 절차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프라이드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런 규칙 붕괴 설정들은 다른 살인게임 장르물에선 결코 허락되지 않는 부분인데(규칙 위반을 시도하려던 이들은 시작단계에서 철저하게 제압된다.) 그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의 진행자들은 타 살인게임 진행자들보단 좀 어설프다고 하겠다. 

("너 6억 원 아니야? 아까 진행자들이 6억 원이라고 하던데?" "6억이 아니라 60억이야. 걔(진행자)들도 모르는 게 있어.")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하진 않은, 어쩌면 현실 시장경제 더 근접하게 표현하려 했지는 지도 모르겠다. 타 살인게임 장르물과의 차별점을 두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런 설정도 일종의 'K화'가 아닐까 한다.


"디스 이스 코리안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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