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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21. 2021

"우리가 신경 쓰는 정체성만"

"우리가 좋아하는 정체성만 챙기겠다."

1.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히틀러를 까는 오래된 코미디 영화가 하나 있었다.

이 영화에선 히틀러에게 성소수자 남매(?)가 있음을 가정한다. 이 형은 남자지만 스스로를 여자라 생각하며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 트랜스젠더이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래되고 전형화된 조롱과 비하로 점철되어있는데, 히틀러의 형(?)은 남자임에도 억지스럽게 여성처럼 하고 다니며 그 억지스러움으로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영화가 만약 작금에 나왔다면 전 세계의 소위 민주진보진영(리버럴)들로부터 가혹한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히틀러를 까려고 한다면 책 잡을 건더기가 한 바가지일 텐데 독재와 학살, 전쟁 발발과 같은 무수한 결점들을 다 치자하고 "멍청하고 징그러운 성소수자 형제를 둠"이라는 요소로 까야만 했느냐고. 성소수자의 존재가 가족들에게 그렇게 부끄럽고 한심해야만 하냐고.


2.
역시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모 법정 드라마의 몇 달 전 에피소드이다. 대안우파운동을 준동하며 많은 지지자들을 모으고 외국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던 한 청년 선동가가 법정에 끌려온다. 이 청년은 법정에서도 "나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을 뿐이오!"라며, 마치 독립운동가와 같은 포스를 보이면서 지지자들을 더욱 환오케 한다. 


법정은 결국 이 당당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는 데, 그 방법이라는 게...

법정은 이 당당한 혁명투사가 사실은 좋아하는 여성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 바치며 사귀자고 조르다 비참하게 외면받은 한심한 진따였음을 까발린다. 오늘날 찐따-대안우파 코스를 타게 되는 다소 정형화된 '찐다' 젊은 남성들의 좌절상을 한낱 조롱거리로 삼은 것이다. "여성에게 매달리다 차게 외면받는 찐따남의 모습"은 이렇게 손쉽게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실제 여성에게 외면받는 상황은 남성에게 큰 스트레스이며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내리는 경우도 많지만 드라마는 이 모든 것을 일게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전술한 영화에서 성소수자라는 요소를 웃음거리로 소비했듯, 후자의 드라마는 (이성에게 외면받는) 남성 찐따라는 요소를 웃음거리로 소비한다. 


3.


사실 10년 전만 해도, 성소수자에 대한 고약한 조롱은 좌우할 것 없이 흔해 터진 일이었다. 많은 개그 프로그램들은 "남자인데도 여자처럼 꾸미고 다니며 억지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바보 같은 성소수자 캐릭터"를 동원하여 관객들의 손쉬운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걸 보며 더욱 좌절한 성소수자들이 수치심에 결국 목숨을 끊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시청률이 더 중요했던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소수자라는 이름은 더욱 수치스럽게 변모하고 그들의 인권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로 민주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더 이상 그러지 말라!"는 압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성소수자를 웃음거리로 삼는 행태는 민주진보진영들로부터 가혹한 뭇매를 맞았으며, 그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러한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어떤 이들은 "생물학적 본능으로 거부감이 드는 걸 어떡하냐!"라고 따졌지만 그러한 주장은 주류시장에서 수용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중시한다는 이들이 '주류 인종 남자 찐따'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어떠한가? 두들겨 맞고 이성에게 외면받는 그들의 모습은 민주진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많은 문화 관념 매체들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스스로 약자를 위하는 민주진보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그 민주진보인들은, 주류 인종 베타메일들의 아픔에 대해선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        


후자의 드라마는 대안우파 운동을 비난하며 약자들(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중시한다는 주제의식을 보여주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약자성(이성에게 외면받는 주류 인종 이성애자 베타 오메가 메일들의 고통)은 그저 웃음거리로 소비해 버린다.

+약자를 위한다 말하면서 약자를 조롱하는 이 역겨운 위선. 오늘날 너희가 범세계적으로 미움받고 비난받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증오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거대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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