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향취
20년 전엔 지금처럼 정보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인터넷이란 개념이 이제 막 대중사회에 보급되던 타이밍이라. 나와 친구들은 가까스로 구한 게임잡지와 각종 정보집들이나 찾아보며 게임에 대한 빈약한 정보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의 헤비유저가 아니고서야 우린 레벨 70, 80대가 되어서도 탈셋이니 불멸왕이니 샤코, 배추, 스웹, 메피장, 뱀파장 이런 것들은 전혀 알지도 못했고 무슨 짓을 해도 올 스킬 10을 넘길 수가 없었더랬다.(5가 넘으면 무난한 편이었고 만약 10을 넘긴 친구가 있었으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히 '횃불 퀘'와 같은 건 애초에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 영역이 아니었다.
아이스블링크 하나 나온 게 대단한 습득이었던 시절이다. 친구가 조던링 하나 주고 사갔던 기억이 난다. 남들 다 잡는다던 그 만인의 빵셔틀 메피스토조차도 버거웠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개나 소나 다 되지만 매찬을 250 넘게 맞춘다는 거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일이었다. 매찬을 250 이상 맞춘 어떤 무시무시한 앵벌바바가 훨인드를 한번 돌 때마다 노란색이 두 개씩 떨어지는데 바바는 그걸 처다도 안 보고 지나가더란 이야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전설처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아무도 안 쓰는 그 레어템들 말이다.
당시 우린 매찬 중심 세팅으로 250 이상을 맞추었는데도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벨 80이 가까워지는데도 자력으론 바알에게 도저히 접근을 할 수가 없었더랬다. 바알런을 뛰는 고수들 방에 들어가 그들을 따라다니며 구경이나 하는 게 전부였지.
고수들 역시 경험치와 아이템 드랍률을 올리기 위해 나와 같은 디린이들을 필요로 했다. 그렇게 고수와 하수가 한 방에 모이면 고수들은 하수들을 바알 근위병들이 나오는 그 접견실(?) 한쪽에 세워두고 방해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경험치나 주워 먹다 나가시라고 했다. 혹여 도움을 준답시고 그 의미도 없는 알량한 오브라도 날려대면 고수들은 "매찬 떨어진다."며 화를 냈다. 그렇게 우린 접견실 구석에 병풍처럼 뎅그러니 서서 고수 몇 명이서 헬 풀방의 바알 호위병들을 마구잡이로 휘저으며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그 장관을 그저 넉 놓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그땐 옆에서 구경만 해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같이 플레이를 했는데도, 심지어 같은 레벨대 이면서도 그들과 나 사이엔 무언가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언제쯤 저들과 같아질 수 있을까?" 그게 항상 의문이었지.
...
시간이 흐르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그때의 신비'도 하나씩 베일을 벗게 되었다. 샤코, 배추, 메피장, 스웹, 스피리트, 통찰, 순종, 배신갑, 교복, 신오브 등등. 리메이크가 나왔고, 다들 신나게 달렸다. 아직도 바알 영역은 다소 성가시긴 하지만 카생 정도는 그럭저럭 돌고 있다.
고수들은 항상 투덜거린다. "이젠 그런 거 팔아봐야 짜장면 하나도 못 사 먹는다."
그리고 그 투덜거림을 보며 생각해 본다. 예전에도 이렇게 현금 시세를 따져가며, 투덜거리면서 게임을 했었던가? 그네들이 하도 시세를 따지다 보니 나 역시 자꾸만 현금 시세를 찾아보면서, 그렇게 따져보면서 계산기를 돌리게 되더라.
샤코, 배추, 메피장, 스웹, 스피리트, 통찰, 순종, 배신갑, 교복, 신오브 등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갈수록 "그때 그 시절 풀방 고수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지만
올 스킬 +2를 해 주는 그 레어 지팡이 하나가 그렇게 소중했던 그시절.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그때 그 시절'만의 묘한 재미만큼은 완전히 되돌아오지 못한 체 가슴 한 켠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공허감으로 남겨져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