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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Nov 28. 2019

유연성과 일관성

일관성을 유지하며 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사람은 주장이 일관되어야만 해. 언제는 이랬다가 좀 지나면 저랬다가, 이런 사람을 누가 신뢰하겠어?"

"사람은 때론 자기랑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좀 수용할 줄도 알아야 돼. 끝까지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사람을 누가 좋다 하겠어?"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많은 혼란을 느끼는 듯하다. 나 역시 때로는 전자를, 또 한편으로는 후자를 강조해 왔던 바 있다. '일관되지 못한' 모습인가? 이 부분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자면, 


"애초에 저 두 가지 주장은 상호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건 간에 '단일주체'는 당연히 항상 일관된 주장을 하여야만 한다. 만일 단일주체 내에서 논리적 비일관성이 발생할 경우, 바로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그러한 논리적 충돌을 보인 것에 대해 주변에 사과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단일주체가 자기 논지의 일관성을 굳게 유지하려 함"과 "명백히 자신과 다른 부분을 가진 외적 주체와의 교류"는 분명 다른 부분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짐"이 "서로 적대해야 함"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해내지 못한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생각이 다르면 마땅히 적대시하고 서로 싸워야만 한다."라고 생각한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이들은 절~대 큰 무리를 형성할 수 없으며, 때문에 정치 주도권 획득 싸움에서도 반드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사상적 유전자 풀이 99% 일치한 그룹 내에서 단 1%의 차이 때문에 서로 죽자 사자 싸우는 모습을 보면 많이 안쓰럽다. 그들의 대의에 동조하건 안하건을 떠나서 말이다. 이건 그냥 '관계의 기술'이 없는 것이다.)



10가지의 안건에 있어서 10가지 다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은 아마 전체 구성원중 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0.1%만을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다면 대체 무슨 대의를 이룰 수 있겠는가!


10가지 중 7가지가 다른 사람이 있을 경우, "3가지에 있어선 힘을 합칠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결코 당신의 일관성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은 그저 명백히 다른 부분에 대해서 차이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아, 물론 상대와 관계가 보다 두터워지면 지속적인 설득과 조율을 통해 동일점을 더욱 늘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것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지속되는 상호 설득과 교류의 과정은 당신의 지적 기반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제1세계 '진보'세력에 대한 비난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들은 '태초에'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했었는지 자체를 아예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타협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 속에서 "자기가 누구였는지"자체를 잊어버려선 안된다. 

또한 그것이 "기존에 굳어진 생각을 아예 바꾸려 하지 않는 종교스러운 아집"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완전하게 입증당했을 땐, 깔끔하게 기존 주장을 포기하고 수정을 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지금 '진보'라고 하는 치들은 맞지도 않는, 상호 충돌되는 바보 같은 담론들을 (68 혁명 이래로 반세기 동안) 수정, 조정하지도 않은 채 '종교적으로' 고집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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