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Dec 25. 2021

페미니즘과 이로 인한 혼파망

발전적인 혼돈과 퇴보적인 혼돈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쓸쓸한 히키코모리답게, 

오래간만에 '좌파 철학하는 그 대단한 친구'의 사상 글들을 다시 찾아 읽어보며 참 많은 생각에 잠기는 중이다.

다시 읽어봐도 이 친구 사상은 참 대단한 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페미니즘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페미니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페미니즘'이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


좌철자 친구는 "혼돈! 파개! 망가!"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러한 혼파망이 지금 사회가 가지고 있는 '증상'을 더욱 잘 드러내 보여주고, 이로 인한 바람직한 성찰(질병에 대한 치료)이 이어질 수 있다면 이 역시 좋은 현상이라 보았다. 적절한 혼파망은 사회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거야.

아니, 몸의 어디가 '좀 아파야' 내 몸에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 아냐? 차라리 한 번쯤 많이 아파서 제대로 된 치료로 이어지는 게 좋은 거지. 통증이 없거나 진통제로 커버 가능한 수준이라 그냥 씹고 살다가 아예 다이렉트로 말기암까지 진출(?)해 버리는 것보다 말이야.

(이런 혼파망에 대한 긍정은 종종 좌파를 답이 없는 폭력혁명 폭력성애자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페미니즘과 안티페미, 이로 인한 끝없는 젠더 혼파망도 이러한 혼돈과 갈등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더 바람직 한 길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것이고 필요한 '성장통'이 될 것이다.


문제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단어가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저 적과 아군을 나누기 위한 하찮은 '텅 빈 기표'로 전락해 버렸다는 점에서 나왔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이들 스스로가, 바람직한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잘못된 페미니즘이 무엇이며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가 하는 성찰들을 포기하고, 그저 니편내편 편 가르기 아수라에 환장한 악귀들이 되어버렸다는 거.

이런 식이면 혼파망은 더 나은 성찰과 결론이 아닌, 그저 끝없는 혼파망으로 귀결될 뿐이다. 정반합이 아닌 정반퇴의 비극적인 변증법 속에서 사회 전체의 레벨 수준도 끝없이 하락해 간다..


'페미니즘'이 나쁜 게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적 '증상'을 통해 더 바람직한 '성찰'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


좌철자 친구는 이러한 양상이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불행이 아닌,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근본적인 특성이라고 보았다. 엘리트주의자였던 이 친구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선 정반합을 만들어 내는 건전한 혼파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지. 아무리 좋은 철학적 개념들(사회주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환경주의, etc..)이 있었다 해도 현대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선 결국 본래의 취지와 의도를 상실한 체 그저 니편내편이나 나누는 '텅 빈 기표'로 전락할 뿐이고 이에 의한 정반퇴의 싸구려 개싸움밖에 나올 수 없다고 보았지.


현대 민주주의가 '잘못' 작동한 게 아니라 

"그런 하찮은 니편내편 싸구려 개싸움"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특성이고 체제의 불가피한 결과물이라고 보았다고.



혼파망 속에서 '증상'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보편성을 끌어내는 작업은 '일반 대중'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며, 그걸 해 내지 못하는 걸 그들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마치 의학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이 암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걸 일반인의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나는 그 친구가 아니기에, 엘리트주의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혼파망 속의 대중들'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어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한 번 즘은 생각해 볼만 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요약
1.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무수히 많은 찬반 논쟁들이 이루어지며 그 속에서 더 좋은 성찰들이 나올 수 있어야만 했다.

2. 하지만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이권에 눈먼 인간들은 자신들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인간들을 모두 악당으로 매도해 버리고 공론장을 닫아버리는 방식을 통해 건설적인 논의의 발생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3. 결국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그 본래의 취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저 네 편과 내편을 나누려는 원초적인 용도밖에 남지 않은 '텅 빈 기표'로 전락했고, '더 나은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 니편내편의 수준 낮은 혼파망들만이 지천에 널리게 되었다. 


+나는 '철학쟁이들의 통찰 쩌는 이야기들'이 좋다. 정말 좋다. "이런 게 야스지!"소리가 절로 나온다. ㅇㅇ 거짓말 아니고 진짜 야스 맞다. 레알 오르가즘 느낌.

++"페미니즘이 나쁜 게 아니다"라는 대목에서 버튼 눌릴 안티페미 친구들이 있을 법 한데

애초에 이 친구 사상으로 보면 나치 조차도 나쁜 게 아니다.

그 나치의 난동을 통해 사회가 더 나은 성찰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면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소비되느냐?"의 문제라고 한 거

약간 지젝 스타일 사상임

+++좀 더 이야기하자면, 좌철자 친구가 '그런 개싸움'을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물로 보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다수결'이다.

사물의 옳고 그름이 다수결로 결정되는 세상에서, 1+1이 2인지 3 인지의 여부가 수학적 논리적 성찰이 아닌 다수결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논리적 성찰이 아닌 51:49만를 위한 니편내편의 개싸움이 남발되는 게 어째서 이상한 일이냐는 주장.  

그래서 엘리트주의를 해야 한다는 모 공산주의자 님의 흥미로운 말씀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백신과 음모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