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Apr 26. 2022

진격의 거인은 극우? - 약 스포

그게 극우라면 '그 극우'를 용인하라.


만화책으로는 완결이 났다지만 나는 애니만 보았기 때문에 아직 엔딩을 알지 못한다. 고로 내가 본 '땅울림 군단의 대륙 상륙'까지의 내용만을 기반하여 언급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 하지만 '극우로 의심받을만한 지점'은 분명 존재하는데 '에르디아'라는 설정 자체가 그러하다. 


작중 에르디아인은 일종의 '전범 후예들'이다. 때문에 그 에르디아를 혐오하는 마레인들은 에르디아인들을 짓밟고 괴롭히며 심지어 괴멸시키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양측 등장인물 간의 언쟁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에르디아파 : 우리가 사악한 압제자였던 것도 100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 시절을 살아보지도 못한 후손인 지금의 우리들이 왜 그 죄의 대가로 짓밟히고 희생당해야 해? 

마레파 : 어쨌든 너네 조상이 죄악을 많이 저지르고 다녔던 건 팩트잖아! 너희는 사악한 전범의 후손이기에 좀 피해보고 희생당한다 해도 동정받을 자격 같은 거 없음ㅇㅇ


그리고 이렇게 평행선을 그리는 듯했던 양측의 입장은 결국 마레파 사람들이 에르디아파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것으로 합의에 이르게 된다.


마레파 : 생각해보니 너희는 과거의 악행과 상관없는 좋은 사람들이었어. 그런 너희를 과거 조상들의 전범 행각만으로 미워하고 짓밟으려 했던 우리가 잘못했어. 용서해다오.


자, 사뭇 노골적이지 않은가? 작중 에르디아가 '무엇'을 암시하는지를 애써 설명하는 수고는 필요치 않을 것이라 본다.


...


과거 나치 일제에 대한 일방적인 악마화를 약간이라도 줄여주려는 그 모든 시도가 '극우'라면, 진격의 거인은 분명 극우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조금 용기를 내어 내 입장을 말해보자면, 나는 이제 그 '80년 전의 악마화'도 슬슬 그 정도를 완화해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혹자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치 일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악마화, 금기화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할 것이다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서라도 이젠 '그 악마화'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젠 '반감'이라는 역효과가 더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나치와 일제를 찬양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덮어놓고 무조건적으로 악마화 시키지는 말고 흥분과 분노 없이 차분하게 가타부타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이를테면 명백하게 나치가 등장하는 영화/게임임에도 하켄크로이츠를 표현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욱일승천기와 비슷한 태양 문양만 봐도 거품을 무는 이런 태도가 과연 언제까지 이어져야만 하냐는 것이다.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언급하고 논하려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는 태도가 언제까지 이어져야만 하는가?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식의 극단적인 금기화와 악마화는 오히려 새로운 세대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극우세력 성장의 자양분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를테면, 과거 NL종북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었던가? 군부독재정권의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금기와 악마화가 전쟁을 겪지 않은 이후 세대에게 반감을 일으키고 그 반작용으로 북한을 신비화하는 현상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북한을 막기 위한 군부독재정권의 장치들이 오히려 북한을 더욱 신비스럽고 숭고하게 만들어준 거지. 그리고 지금 이와 무척 비슷한 흐름이 '극우 파시즘'이라는 테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그것도 범 세계적 층위에서.


'새로운 파시즘'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제의 파시즘'에 대한 지나친 악마화와 금기를 그만두어야만 한다.


...


과거 수십 년 동안 소위 '서구 자유주의 진영'이 악마화 해왔던 건 나치/일제뿐이 아니었다. (여성의 상대항으로써) 남성, (청소년의 상대항으로써) 어른, (반항아의 상대항으로써) 모범생, (유색인의 상대항으로써) 백인, (이슬람의 상대항으로써) 기독교 등등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 도식에 의한 반감들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오늘날 대안우파라는 거대한 기류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 '미륵 푸틴'이라는 특이한 종교(?)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푸틴 그리스도께서 페미와 피씨로 물든 이 세상을 정화하러 오신다!"

"푸틴 무함마드께서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서방 자유주의 질서를 불태워버리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거야!"


100년에 걸친 에르디아에 대한 악마화가 에렌 예거의 땅울림 군단이라는 거대한 위협으로 되돌아왔듯

두 세대가 넘도록 진행된 서구 리버럴식 이분법과 악마화가 '미륵 푸틴'이라는 거대한 위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푸틴이 무서운 건 지금 우크라이나에 와 있는 재래식 군대 때문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서구 리버럴들의 악마화에 한을 품은 그 분노의 에너지들이 '푸틴'이라는 이름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권력의 분산과 견제는 필수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