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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05. 2022

성보수주의와 매춘

모순을 내포한 변명

안페진영 내 성 보수주의파와 성 자유주의파의 대립이 흥미롭다.


성 보수주의파들은 성 자유주의파와 함께 '자유'를 명분으로 페미니즘의 문화 억압을 비판해 왔던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적당한 성 억압은 건전한 사회풍토를 위해 불가피하다."라고 주장을 바꾸려니 문제가 안될 리 없지. 마치 국내문제에서는 리버럴들과 연대하여 함께 자유 민주 인권을 실컷 주장해 놓곤 국제문제로 가선 자유 민주 인권과 가장 거리가 먼 전체주의 세력들을 옹호해 버린 구좌파들의 불편한 모순처럼 말이다.


...


성보수주의파들도 리버테리어니즘 논리를 가져와 나름 '변명 논리'를 만들긴 했다. 


자유를 극도로 중시하는 리버테리언들에게도 몇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원칙은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리버테리언들은 자유로운 거래와 계약은 가능하지만 그 행위의 주체가 되는 '자유권' 자체는 매매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리로 이들은 노예계약과 거래를 반대한다. 


성 보수주의자들은 성매매를 반대할 때 바로 이 논리를 차용한다. 이를테면, 성 판매자가 십만 원을 받고 30분간의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로 했을 때, 성 매수자는 그 30분간 오직 매수자의 성적 만족만을 위해 봉사하는 성적 노예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스스로 판매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성매매는 범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이 있다.


의사가 삼백만 원을 받고 두 시간 동안 환자의 수술을 집도한다고 하자. 삼백만 원을 받은 대가로 의사는 향후 두 시간 동안 오직 환자의 수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상태가 된다. 이를 보고 당신은 "돈 삼백에 의해 의사가 두 시간 동안 수술 노예로 전환된 상태" 라 말할 수 있는가?


어디 의사뿐이던가? 당신이 음식을 주문한 순간 주방장은 소정의 시간 동안 당신의 미각을 만족시킬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한 존재로 전환된다. 회사원은 급여를 받는 대가로 하루 8시간 이상을 회사에 머물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 전환된다. 이 모든 게 다 노예계약인가? 아, 물론 열악한 처지를 한탄하며 "노예계약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다!"라는 표현이 상투적으로 쓰이긴 하지.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 모든 직업은 전부 노예의 상태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독 '성매매업'이라는 업종에 대해서만 "노예의 상태를 전제한다."라며 비판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



사실 이 부분은 리버테리어니즘 자체가 내포한 결함이기도 하다.(필자가 리버테리언들과 논쟁하며 많이 우려먹었던 부분..)


사실 마르크스조차도 노동력을 '거래'하는 자유민(노동자)과 노예는 분명 다른 개념이라 언급한 바 있으나 그런 '성문법적 측면'이 실제 세상에서 얼마나 유의미하게 작용되나? 이를테면 "자유민 노동자에겐 최소 이 정도의 노동조건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라는 성문법적 조항이 있다 해도, 그보다 열악한 조건으로라도 일을 해야만 하는 극단적 상황에 몰려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러한 성문법적 조항은 종종 너무나 쉽게 무시되지 않던가?


노예라는 게 별게 아니다. 태초의 노예는 몰락한 자유민이 생존을 위해 대감님들께 찾아가 극도로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을 계약하며 발생된 것뿐이다. 위에도 언급한 "자유민 노동자에겐 최소 이 정도의 노동 조건을 보장해야만 한다."라는 현대 국가들의 성문법은 바로 이런 "노예계약"의 재발을 최대한 막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노예계약에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리버테리언들은 정작 그러한 노동권 법률들에 극도로 부정적이지. 능력이 없고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라면 노동법 조항이 보장하는 최저조건 이하의 조건으로도 얼마든지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며 말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비난했던 "염전 노예"가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발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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