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May 22. 2022

주혜(가명)라는 아이

또 다른 기억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또 있다.


고1 여름. 우리는 검은색 반바지를 하계 체육복으로 쓰고 있었는데, 체육시간이 아닐 때면 나를 찾아와 애써 내 반바지 체육복을 빌려가 입던 여자애가 있었다.(여자애들은 치마가 불편하다고 종종 반바지 체육복을 입고 생활하곤 했었다.)


내 성격이 좀 까다로운 편이라 내 물건을 남에게 둔 상태로 오래 못 견디는 경향이 있는데(일전 친구에게 돈 빌려준 일화 참조) 그래서 난 그녀를 찾아가 "어지간하면 니 치마 입고 내 바지는 돌려줘."라며 뻔질나게 요구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가만히 있었고 말이지.


그녀에 대해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일화가 있는데, 어느 여름에 내가 동네 뒷산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난 갑자기 알 수 없는 격한 갈증과 현기증을 느꼈고 그렇게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가 간신히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수도 없이 뒷산을 오르내리면서도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나는 이 일을 학교 커뮤에 어떻게 썰로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소 상기되어 있었더랬지. 근데 커뮤에 들어가 보니 이게 웬걸? 주혜 갸도, 놀라울 정도로 공교롭게도 '그 시점' 버스를 타고 가다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갈증과 현기증, 어지러움에 쓰러졌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이미 실려있지 않은가!



...


사실 이 정도만 때문에 지금 애써 그 아이를 되새기고 싶어지는 건 아니다. 그녀는 내게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1학년 말 즈음.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수민(가명)이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 한계를 체감하며 무척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더랬다. 그러한 고민들로 인해 매시간마다 책상에 말없이 자빠져 있다 보니 안 그래도 찐따인 난 더 찐따가 되어갈 수밖에 없었더랬다.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도,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을 때, 오직 주혜만이 자리를 옮겨 내 옆으로 와 주었다. 


사실 주혜 입장에서 내가 딱히 달가워야 할 요소는 없었다. 주혜는 학교 내 큰 개신교 동아리 소속이었는데 난 이미 학기 초에 "난 개신교가 싫어! 개신교 사상은 정치에 해악!"이런 선포(?)를 하며 그 동아리 친우들과 한바탕을 벌인 전력이 있었으니까. 그 동아리 사람들 입장에서 애써 스스로 도태의 길을 걷고 있던 내게 애정 어린 위로의 손길 같은 걸 보내줘야 할 이유 따윈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학교 '계급'이 나보단 더 높았기 때문에 다른 좋은 친우들을 제쳐두고 나한테 애써 시간을 투자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지. 그런데도 그녀는 매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나의 그 답 없고 어두운 말들을 묵묵히 들어주었더랬지.


"난 속았어. 어렸을 적에 접했던 소년 만화들은 이 세상이 사랑이나 우정 같은 뭔가 멋있고 간지 나고 암튼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그런 희망 같은 걸 주입시켜줬었는데 지금 이게 뭐야? 같잖은 시험 점수 같은 거, 점수, 경쟁, 폭력 이런 것들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야."


"오늘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서 눈을 감으면 감쪽같이 그대로 영원히 일어날 수 없게 되기를 바래. 근데 그런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고 내일 아침이면 난 또다시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눈 뜨게 되겠지."


이런 철 지난 중2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노라면 주혜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나도 이해해.." "그래도 힘내.."와 같은 위로를 한 마디씩 내어주곤 했었다.



가끔, 내가 아주 특별히 더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날이면, 내 옆자리에 앉은 주혜는 나지막이 물어보곤 했었다. 


"세환아. 너 혹시 내가 여기 앉는 게 싫어?"


그럴 리가요! 너 아니면 지금 나한테 말 걸어주는 사람이 누가 있고 내 옆에 올 사람이 누가 있는데! 당연히 고맙죠. 감사하죠! 눈물 나게 감사하죠!


"... 아니. 괜찮아."


...


먼 훗날. 군대를 다녀왔을 때 고1 담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1 때 담임선생님은 참 훌륭하신 분인데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참고로 '그 개신교 동아리' 담당교사셨다..;;) 주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세환이 네가 가서 위로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때 난 한창 바쁠 때여서 그냥 의례적으로 네네~ 하고 넘어가 놓곤 실제로 가지는 않았다. 고1 이후 별 다른 연락도 없던 친구의 조부모 장례식까지 내가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나?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더했지.


근데 생각해보니까 말이지.. 주혜 그 친구 말이야.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웠었다. 내 어설픈 기억으론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 조부모님께서 보살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그녀에게 할아버지의 서거는 일생일대의,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으리라.


아..... 아.... 주여....!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의 죽을 때에 부디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는 그렇게, 내가 가장 힘겨웠을 때 애써 내 곁으로 찾아와 나의 심리적 버팀목을 자처해주었던 누군가가 가장 절실하게 나를 필요로 했을 때 또다시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체 넘어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


지금은 그녀 역시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잔상으로 남는 기억의 고통은 그저 내 몫으로 남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저 그녀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리고 그녀 역시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다.


참고로 악착같이 그 자태를 그림으로 남겨 두었던 수민이와는 달리 주혜의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슴프레 외모가 기억나긴 하지만 지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서글퍼지는 부분.

작가의 이전글 두 후지이 이츠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