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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22. 2022

친구 종한이(가명)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궁상 글.


고등학교 때 종한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게 "수민(가명)이가 너 사랑한다 그랬데!"라고 전했던 그 친구이기도 하다. 


덩치가 크고 다소 거친 외모를 가졌던 이 친구는 언제나 밝고 명랑하고 쾌활했다. 특히 맛깔난 음담패설이 일품이었는데 변강쇠 옹녀스러운 그런 류의 이야기들을 어찌나 맛깔나게 잘하던지, 어지간하면 음담패설을 별로 즐기지 않은 나조차 이 친구의 재기 발랄한 이야기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을 잘했다.


보통 이렇게 밝고 에너지 넘치는 쾌활한 친구들은 보통 나같이 우중충하고 우울한 무리들과 섞이지 않는다. 일진이나 인싸 무리로 가지. 그럼에도, 흥미롭게도 이 친구는 애써 '우리'와 어울리며 무리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에게도 깊은 어둠이 있음을 알게 되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편부모. 궁핍한 가정환경과 쌓여가는 집안의 빚. 원인을 알 수 없는 건강상의 하자. 도무지 보이지 않는 내일..

이 모든 어둠을 이겨내고자 웃음과 밝음이라는 가면을 그토록 억지로 끼우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적어도 10년은 됐으리라 본다.

이 친구가 나와 통화를 하며 사뭇 비장한 각오로 물어온 적이 있었다. 



"세환아. 너 자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그 목소리의 비장함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통화를 종결하고 곧장 이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통화 때보다도 더 비장한 각오를 다진 듯이 보이는 이 친구와 마주했다.


"더 이상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별 수 없다고 결정 내렸다. 다만 너가 어떻게 생각할지 정도가 궁금했다."


그 단호한 말투와 표정으로부터 이미 내가 돌이킬 수 있을 어떤 시점이 지나가 있음을 직감했더랬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가 말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철저하게 자유주의자다. 너가 너 스스로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한들 내가 너한테 뭐 보태줄 말은 없을 것 같다!"


이 말을 건네고서


...울었다. 

그 자리에 자빠져서 울었다. 엉엉. 

이제 조만간 스스로 이승을 하직하려는 이에게, 개뿔도 없는 친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눈물밖에 없었으니까. 정말 태어나서 언제 그렇게 울어봤을까 싶을 정도로 서럽게,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아 뭐야... 너 이러려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어?"


이게 내 '마지막 선물'을 접하고 다소 당황했던 그 친구가 보였던 반응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다음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


.


.


.


.


.


.


.


... 결국 그 친구는 자살하지 않았다. 어여쁜 아내를 얻어서 의젓한 사회인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와는 다르게,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하고 멋진 청년으로 말이지.



나도 이제 궁상 글들을 이 정도로 정리해볼까 한다. 그리고 내일부터 나의 삶으로 돌아가야지.

지금까지 오글거리는 궁상 글들을 꿋꿋하게 보아준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참 모진 삶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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