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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24. 2022

위대한 성애자와 위대한 비판자

회피하면서 비판할 수는 없다.


어떤 사상이 싫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사상의 대척점이라 여겨지는..) 반대편 사상의 무지성 숭배자가 되곤 한다. 기존 사상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대척점 사상의 무지성 숭배자가 되지 않고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데, 그 '얼마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 그들이라 보면 된다.


그럼, 또 다른 대척점 사상의 무지성 숭배자가 되지 않는, 기존 사상의 위대한 '독자적' 비판자가 되었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나?


...


1. 지금 이름은 잘 기억 안 나는 어떤 아리스토텔레스학 권위자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이 사람의 이해도는 지독하게 높아서 당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사람의 지성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 이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였을까? 정 반대다. 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가장 가혹한 비판자였다. 신실한 무슬림이었던 이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이성주의'를 비판하고 알라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고자 했고, 비판하기 위해 기꺼이 '아리스토텔레스 성애자'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거의 병적이고도 변태적인 수준의 집착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거진 세포단위 수준까지 물빨핥했던 결과, 그 시대에 이 사람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비판자가 될 수 있었다. 


2. 우리는 맑스하면 공산주의, 공산주의하면 맑스를 떠 올리곤 하지만 사실 맑스의 역작에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온다. '자본'론. 그래, 이름부터가 '자본주의'이다. 

사실 맑스는 위대한 자본주의 성애자(?)였다. 간단하게, 당대 맑스보다 더 철~저하고 처절하게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해부했던 지적 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맑스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자본주의 사상의 권위자였던 것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자본주의 비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위대한 인물은 아니지만 필자가 68혁명과 포스트모던을 정말 싫어했던 적이 있었다. 68혁명과 포스트모던이 너무 싫어서 이를 비판하려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필자의 머릿속엔 온통 68혁명과 포스트모던이란 단어밖에 없게 되었다. 때문에 진보너머에선 "박세환 저 사람 모임 때마다 와서 죽자 사자 68혁명, 포스트모던 이야기만 꺼낼 텐데 그거 못하게 해야 한다. 박세환이 68혁명이나 포스트모던 단어를 꺼낼 때마다 벌칙을 주자" "실례지만 세환님은 68혁명이나 포스트모던이라는 어휘가 없으면 문장 구사를 아예 할 수가 없으신가요?"와 같은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4. 가톨릭을 가혹하게 비판하며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던 마르틴 루터는 신실한 가톨릭 성직자 출신이다.


5. 사상가는 아니지만, 한니발을 처 부수고 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 스키피오는 당대 로마에서 누구보다도 지독한 한니발 성애자였다. 한니발을 향한 병적인 집착 끝에 그는 한니발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보듯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결국 자마에서 한니발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한니발은 스키피오에 의해 몰락했고 죽음을 피해 동방으로 도망을 갔는데, 스피키오는 그 동방까지 한니발을 찾아가 결국 물어보았다 한다. "한니발 씨 나 어땠어?" 흠좀무... 


...


다른 반대편 사상의 무지성 추종자가 되는 흔한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기존 사상에 대한 위대한 비판자로 남은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비판 대상으로 삼았던 그 사상에 대한 거의 변태적인 수준의 성애자들이었던 경우가 많다. 변태적인 수준의 성애자였기 때문에 그 비판 대상에 대해 세포단위 수준으로 깨알같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사상의 대척점에 있다는 다른 사상이나 지적 작업들엔 큰 관심이 없던 이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대상이 되는 사상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비판할 수 있었지만 그 사상의 대척점에 있다는 다른 사상에 대한 무지성 노예가 되지도 않았다.(ex : 가톨릭이 싫다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게 아니라 가톨릭 그 자체를 비판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는 거) 


어떤 사상에 대한 위대한 비판자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사상에 대한 지독한 성애자가 되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저 새끼는 만나면 '그 사상'이야기밖에 안 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상' 지지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 사상'은 어떤 문제의식으로, 어떤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도입되었는가? '그 사상'은 어떤 흥망성쇠를 겪었는가? 잘 나가던 '그 사상'은 어느 섹터에서 고장을 일으키게 되었던가? '그 사상'을 중간 혁신해보고자 했던 시도들은 있었는가? '그 사상'은 왜 결국 실패하게 되었는가? '그 사상'은 무엇이며, 나는 '그 사상'의 본질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그 사상 그 사상 그 사상 그 사상...


...



페미 피씨 난동 이후 서구식 리버럴 체제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리버럴을 반대한다는 이들 중 '리버럴 성애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피상적이고 막연한 수준의 비판을 하며 리버럴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되는 다른 어떤 사상의 무지성 숭배자의 길을 걸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구 리버럴보다 먼저 몰락해간, 한계가 뚜렷한 과거 사상들을 다시금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길의 끝에 지금 리버럴의 천태만상보다 더 나은 내일이 없을 것이란 점만큼은 무척 자명해 보인다. 


다시 말 하지만 기존 사상의 위대한 비판자가 되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길의 개척자가 되려고 하는 이라면 기존에 나와있는 반대편 사상의 행보에 너무 의존해선 안되며, 당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그 사상'에 대한 처절한 성애자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길은 그 처절한 성애의 끝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 사상'을 완벽하게 비판하기 위해 처절하게 '그 사상'속으로 들어가 '그 사상' 성애자가 되던가


비판이건 지지건 '그 사상'을 향한 모든 관심을 내 버리고 그냥 '그 사상'을 회피하며 살아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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