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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24. 2022

문제의식은 담론의 시작

나무의 씨앗


하나의 담론은 하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특별히 무엇에 대해 X 같다고 느꼈는가?"


담론의 성장에 있어 '중심적 문제의식'은 '씨앗'이 된다. '지식'은 양분이다.


애초에 씨앗(문제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흙에 아무리 많은 양분(지식)을 뿌려봐야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그저 잡초만 무성해질 뿐. 그런 사람은 다식가는 될지언정 담론가는 될 수 없다. 담론의 '총론'도 다 이 제반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


단순히 페미 피씨를 때리는 걸 넘어 그 상위 개념인 서구 리버럴 그 자체를 공격했던 몇 사람의 여정.


성XX 페친은 서구식 리버럴에 대해 '연대의 해체'라는 문제의식으로 비판하였다. 서구 리버럴이 가져다준 개인주의로 인해 개개인이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고 서로 이격, 고립되어 각자도생의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거대한 서사(구좌파식 거대 서사가 아닌..)라는 개념을 만들어 망가진 연대의식을, 그 연대에 의한 위대한 사랑을 복원하는 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참고로 필자는 이를 "칼라냐?"라는 식으로 깠었...미안...) 


필자는 서구식 리버럴에 대해 '질서의 붕괴'라는 문제의식으로 비판했었다. '하나의 통일성'이라는 개념을 극도로 부정했던 서구 리버럴은 통일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이는 극단적인 이탈행위들, 이를테면 테러나 범죄들을 미화하는 경향성을 보여왔고 반대로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들을 멸시하는 경향성을 보여왔는데 이게 사회 질서의 무분별한 혼란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정작 그렇게 혼란해진 세상 속에선 상층 귀족계급보단 밑바닥 프롤레타리아트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으며, 때문에 진보좌파라면 '반사회적 행각들'에 대한 무분별한 미화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다소 비슷할 수는 있는데 박가분의 경우는 '정상성의 파괴'라는 측면으로 서구 리버럴을 비판했다.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하다 보니 '정상'을 가르치는 '멘토'들이 없어져 버렸다고. 때문에 이 험난한 세상 속에 내 던져진 어린 사람들은 정서적 지도를 해 줄 멘토가 없이 성장하게 되었고 이게 젊은 층에 무수히 많은 정서문제들을 가져왔다고 비판했었다.


...



다시 말 하지만 비판에는 관점이 있어야 하며, 담론에는 뚜렷한 중심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구심점'이 없이 각론적 층위의 이야기들을 아무런 중심 맥락도 없이 독일 지하 저장고의 소시지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그럴싸 한 고급 워딩들로 양념 치려 해 보야 그저 난잡하고 어지러울 뿐이다. 


양념이 많이 들어가서 훌륭한 음식이 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양념이 적절한 맥락에 맞게 입혀져야 훌륭한 음식인 거다. 이를테면 많은 재료를 동원한답시고 라면에 콜라나 식초를 때려 부어 봐야 누렁이 식사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천하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째서 오늘날의 천하 사람들은 웃을 수 없는 것인가? 황건적 때문인가? 부패한 탐관오리들 때문인가?" 아마 이것이 창천항로 유비의 문제의식이었으리라.


참고로 필자의 최고 층위 문제의식은 "어째서 박세환, 아서 플랙과 같은 남자 찐따들은 죄를 짓지 않아도 어째서 극악한 죄인들보다 더 모멸받으며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


"열심히 나치를 추종해 봐야 제가 아리아인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동양인일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회의감이 밀려 오더군요.." - 어떤 친우와의 대화 中


..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적 탐방들을 하다 보면 기존 가지고 있던 관념에 대한 회의가 몰려올 때가 있다. 난 A가 옳고 B가 그르다 해 왔는데 암만 봐도 A가 틀린 거지. 이걸 '현타'라고 한다.

'현타'가 왔는데, 끝까지 자신의 노선이 옳음을 고집하기 위해 다른 변명거리들을 찾아다닌다. 이건 '아집'이라고 한다.

아무리 변명거리를 찾으려 해 봐야 아닌 건 아닌 거라 결국 A를 내려놓고 돌아선다. 이건 '용기'이다.


하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담론이라는 나무를 키워나가는 여정에 있는 이라면

이 현타-아집-용기의 과정을 많이 겪는 게 좋다고 본다. 당신의 인식 세계가 더욱 넓혀지고 당신의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의 서사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하나의 뚜렷한 문제의식을 상정할 수 있고, 당신의 문제의식이 당신의 방대한 지식과 어우러진다면 당신도 훌륭한 비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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