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진보의 모순. 이슬람'도' 진보인가?
사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수용 여부'는 진보사상에 있어 언제나 가장 민감한 논제가 되어왔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보수진영에서 주장되었으면 바로 "수구꼴통 머저리 파시스트에 노답 복고 주의자"로 완전히 낙인찍혀 마땅히 사회적인(어쩌면 물리적으로까지) 죽음을 각오해야 했을 어떤 주장들에 대해, 그것의 발화자가 '이슬람'일 경우엔 문화상대주의라는 명분으로 수용되어야만 하는가?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면 그러한 상대주의는 어째서 나치나 극단적 기독교 원리주의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인가?
우 웰벡은 '진보'들의 이러한 위선적 태도를 소설을 통해 통렬하게 비꼰다. 소설 속에서 '진보'들은, 우파가 시도했으면 뼈도 못 추렸을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단지 발화자가 이슬람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무력하게 수락해 주고 만다. 결국 그렇게 여자들은 자신들의 몸매를 감추어야만 했고 남자들에게 복종하며 직업현장에서도 무력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좌파가 그것을 막아주지 않으니까)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는 이유도 의미심장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분명 마초적이고 보수적이다. 그는 가부장제를 지지한다. 이것은 소설 초반에 애인과의 대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러한 보수적인 측면이 이슬람과 맞아떨어졌다. 그는 "세명의 부인을 거느릴 수 있고, 여자는 항상 남자에게 복종해야만 하는"이슬람의 가부장적 측면에 매료되고 만다.
많은 '진보 쟁이'들은 이 소설을 비난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소설이 던진 이러한 문제의식들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상대를 노답 수구꼴통 파시스트 복고 주의자로 매도하고 있을 뿐이다.
아, 오늘날에도 그 표현은 여전히 쓸모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오늘날 21C에서 조차 "가부장제는 옳았다."거나 "여자들은 아주 제한적인 직업만을 가져야 하며, 남자에게 충성해야 하고, 유능한 남성은 여러 아내를 거느릴 수 있어야만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수구꼴통이며 노답 복고 주의자이고 정신 나간 파시스트 망상증 환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중 많은 이들'이 '문화상대주의'라는 명목으로 진보 쟁이들에게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그저 천년 전부터 해왔던 대로 나름의 신념을 유지해오고 있을 뿐.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되지도 않는 빅-텐트를 시도한답시고 말도 안 되는 괴변들을 총천연색으로 만들어내는 68 혁명 포스트모더니스트 쓰X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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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구조물 두 개가 아직 불타고 있었지만, 마지막 비명이 잦아든 지는 이미 오래였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군단이 테란 전초기지의 잔해 사이로 움직이고 있었다. 두꺼운 점막이 거침없이 퍼져나가, 죽은 적의 몸뚱이를 집어삼키고 차지하려는 열망에 가득 차 이미 시신에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둥둥 떠다니는 대군주의 그늘 아래에서, 군단의 일원이 무릎을 꿇었다. 그 생명체는 자치령 해병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강철 갑옷이 인간과 비슷한 그 뒤틀린 형상을 겨우 덮고 있었다. 촉수와 거대한 살덩이가 틈새로 빠져나와 있었다.
헬멧 아래에서 빛나는 눈 두 개가 밖을 엿보았다. 숨결은 규칙적이지만 무거웠다. 연기가 그 생명체를 휘감았다. 생명체는 킁킁거리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냄새가 그리 달콤하진 않았다.
근처에서 저글링 한 마리가 연기 나는 자치령 망령의 잔해 위를 껑충껑충 달리다가 잽싸게 멈춰 섰다. 네 발 달린 작은 생명체는 자기보다 큰 생명체를 올려다보았다.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얼굴 앞에서, 낫처럼 날카로운 자기 이빨을 행복하게 맞부딪히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두 발 달린 큰 생명체는 내려다보고는 만족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군단이 승리했다. 끝났다.
빛나는 두 눈이 깜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