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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n 05. 2022

정치적 자유주의의 근원은 인간에 대한 불신

권위-전체주의를 신뢰하는 낙천가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전체주의 체제. 엘리트주의자인 '좌파 철학하는 그 친구'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이들과 논쟁을 해 왔는데, 결국 이 모든 논쟁에서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


권위-전체주의에선 행정부 수뇌부 엘리트들에게 (자유민주주의에 비해) 훨씬 강력한 권한을 쥐어주게 되는데 이들이 타락치 않고 언제나 항상 훌륭할 수 있음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 엘리트들은 개별적인 자아를 내려놓고 집단 자아(저그식 군체 의식)의 일부로써, 제갈량 마인드로 언제나 집단 전체만을 위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권위-전체주의 체제는 '그런 사람들'만을 선별하여 엘리트로 임명시킬 수 있는 우월한 인사채용 시스템을 개발해 낼 수 있는가? 


'좌철자'의 경우, 이 지점에서 말 끝이 흐려지며 마지못해 "최종 심급으로써의 대중은 존재하여야 한다.(결국 통치자들이 최종적으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되는 시스템이 있기는 해야 한다.)"라 말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마지막까지 "그런 완벽한 엘리트에 의한 완벽한 권위-전체주의가 가능할 것"이라 주장하였다.


사리사욕에 타락치 않는 완벽한 엘리트에 의한 완벽한 통치의 가능성. 이걸 믿는다면 그는 사실 굉장한 낙천주의자일 것이다. 밝고 명랑하고 낙천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한다. 


...



오늘날 자유주의는 자신들을 '일진/인싸들이 마구 섹스를 즐기는 밝고 명랑한 체제'로 선전하곤 하지만 실제 오늘날 자유주의를 만들어낸 이들 중엔 대체로 음침한 방구석 염세주의자들이 많았다.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을 믿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타락할 수 있는 썩어빠진 존재이다. 고로, 어떤 인간에게도 타인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일방적인 권한을 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많은 권력을 가진 국가 엘리트들이 주된 표적이었는데,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에선 언제나 무수히 많은 견제와 압박들로 국가 통치 그룹 엘리트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아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놓는다. 


통치자들은 '민심 평균'을 넘어서는 그 어떤 특별한 행보도 할 수 없으며,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특별한 발전도 몰락도 기대할 수 없는 딱 그 정도가 무난하다고 여긴다.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 하에선 세종대왕 나폴레옹이라도 아무런 활약을 할 수 없으며, 그들은 항상 무수히 많은 견제장치들(매번 반복되는 선거, 다당제, etc..)의 무수한 시비질속에 지치고 망가지다 실각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게 자유주의 특유의 '인간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처럼 매사 부정적이고 삐딱하며 위선보단 아무래도 위악 심리 쪽에 좀 더 가까운 비 사교적이인 사람이라면 사실 권위-전체주의보단 자유민주주의적 정치관(정치적 자유주의)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보통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을 '다양한 섹스로 인생을 즐기는 젊은 인싸들'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 젊은 찐따들이 이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군대까지 다녀오고 '실체'를 알고 나면 오히려 '다양한 섹스로 인생을 즐기는, 강자의 비위를 잘 맞추고 비겁 비열하게 사회생활 잘하는 인싸들'은 권위-전체주의 방향으로, 필자와 같은 '사회성 결핍 방구석 히키들'은 자유주의 성향으로 전향되는 경우가 많더라.



권위-전체주의 집단에선 구성원들에게 더 사교적이고 집단주의적이 될 것을,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일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난 그딴 거 개 싫어하고 평생 방구석에서 보추짤이나 처 보면서 살거니까 넌 가서 엿이나 처먹어라 BㅓRㅓG같은 인싸새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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