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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n 23. 2022

"그놈이 그놈". 압제자들 속에서..

압제자라고 해서 다 같은건 아니다.


사르데냐라는 섬이 있다. 기원전 포에니 전쟁 직전까지 카르타고의 영역이었으며, 1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가 승리함으로써 로마의 강역으로 넘어갔다.


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이 이탈리아 본토를 들쑤시고 다니는 틈을 타 카르타고 본국에선 사르데냐 탈환 함대를 출정시켰고 사르데냐 주민들에겐 선택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 로마냐 카르타고냐, 누구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카르타고인들이 사르데냐를 지배했을 때 섬의 주민들에게 딱히 잘해 준 것 같지는 않고, 로마인들이야 대놓고 무력으로 자신들을 점령한 정복자였다. 따지고 보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해 먹으려고 오는 가증스러운 수탈자, 압제자일 뿐이니 그놈이 그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르데냐 주민들은 "이놈이나 저놈이나"를 외치며 상황을 방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로마의 편을 들어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카르타고 원정군을 물리치며 계속해서 사르데냐를 로마의 통치 아래로 묶어두었다.



어차피 똑같은 압제자일 뿐이라도 그들이 가진 체제, 시스템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며, 피 지배자들의 삶은 그 차이로부터 결정되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차이'에 있어 로마의 통치시스템이 카르타고의 그것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로마의 수뇌부가 카르타고의 수뇌부보다 착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통치시스템이 피지배자 입장에서 더 낫다고 느껴지면 민중 입장에서 그들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셈. 


결국 그렇게 사르데냐는 로마의 지배영역으로 남게 되었고 이 과정은 (포에니 전쟁의 무대였던) 전 지중해에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카르타고는 로마에게 패배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은 넘들 뿐"이라곤 해도, 통치자들에겐 저마다의 통치 스타일(뭐 이걸 수탈 스타일이라고 불러도 딱히 할 말은 없다.)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민중의 삶은 그 차이로부터 결정되곤 한다. "어차피 한번 해 먹으려고 올라온 다 똑같은 놈들"일지라도, 그들이 가진 통치방식의 차이와 그 차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논하는 건 여전히 유의미한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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