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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22. 2022

바리새인, 그리고 사람의 아들

성서의 원문과 재해석 딜레마

바리새인이라 하면 기독교에서 거의 쌍욕 정도로 쓰는 표현인지라 더러운 배교자 내지 역적 정도로 느껴지기 쉬운데 본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활용되는 어감과는 다르게, 이들은 신심 깊은 (구약) 성서 원리주의자들이었다.


(구약) 성경에서 빨간 옷을 입으라 하시면 빨간 옷을 입어야 하는 거고, 파란 옷을 입으라 하시면 곧이곧대로 파란 옷을 입어야 했던 그런 사람들 말이다. 누구보다도 말씀에 충실한 이들이었고(적어도 본인들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


신약을 읽은 이들은 알겠지만, 이들 바리새인과 예수와의 관계는 최악 of 최악이었다. 예수는 이들을 세리와 창녀만도 몬 하다고 시종일관 까부수는데 당시 시대 세리와 창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려할 때, 이는 사람의 아들이 바리새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로 보지도 않았다고ㅇㅇ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새인과 예수의 대립 상황들을 훑어보면 사실 율법에 충실한 건 바리새인 쪽이 맞다. 이를테면, 안식일 날 예수와 제자들이 논밭에서 곡물들을 '따서' 먹는 걸 본 바리새인들이 말한다.


"안식일엔 일을 하지 말라고 율법에 나와있거늘 그대와 제자들은 왜 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음식을 '따서' 먹는 노동을 하고 있음?"


그러자 예수 가라사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거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냐?"


이 상황에서, 구약의 율법을 기계적으로 준수하고 있는 쪽은 바리새인들이다. 예수는 이 부분을 융통성 있게 재해석하고 있고 말이지.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대립은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간단하게,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기계적인 율법 준수'를 그켬 했다! 실제 예수는 구약 율법의 많은 부분들을 '재해석' 했으며, 사실 그 세부적인 항목 하나하나에 그렇게 얽매이지도 않았다. 때문에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그렇게' 취급했듯 바리새인들도 예수를 그켬 했으며, 결과적으로 예수는 그 바리새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신약에 의하면 오직 바리새인들만이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예수를 해쳤다. 다른 연고자들, 이를테면 헤롯왕이나 총독 빌라도 같은 경우 이 사건에서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아 뒤로 빼려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리고, '바리새인'이라는 단어는 기독교 세계에선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저주받은 용어로 전락하게 되었다. 


(반면 구약을 숭상하는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그저 이단 사이비 문선명 이만희급으로 취급했고 이 풍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수를 "무함마드 이전의 사도"까지 인정해 주는 이슬람과 비교해 봐도 유대교의 예수 대접은 정말 박하다..)  


...


사람의 아들 스스로도 구약의 세부항목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않았고 심지어 율법의 기계적 준수를 부르짖던 이들을 '그렇게' 취급해 버렸는데, 그 예수를 따른다는 이들이 모든 구약 율법의 기계적 준수를 강조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구약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기독교가 구약의 세부 규율들에 대해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가짐에 있어 큰 일조를 했고(이를테면, "구원은 오직 유대민족만이 받을 수 있다."와 같은 조항은 기독교에선 아예 사 문항으로 취급된다.)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오늘날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약' 이야기고요. '신약'은 좀 달라요.


세상 만물을 다 의심하고 부정하려 했던 데카르트도, 그 의심의 주체가 되는 '나'의 존재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듯이("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기독교가 아무리 열린 해석의 공간이라 해도, 그 '해석'의 기반이 되는 주체는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바로 예수이고 그 예수의 말씀이 기록된 게 신약이니까.("예수님이었다면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신약에 대한 자유 해석은 구약의 그것보다 훠어어얼씬 까다로운 일이 된다. 아니, 그냥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편함ㅇㅇ



그래서 구약 말씀 가지고 LGBT 까는 것들이 신약 말씀 재해석(말이 좋아서 재해석이고 그냥 즈들 꼴리는 데로 읽는 거지ㅋㅋ)해서 '부(富)'를 긍정하겠다 이러는 게 웃기지도 않는 거라고요.


결국에 낙타와 바늘귀 그 구절을 '재해석' 해 버렸지! 종교개혁 때 장 칼뱅이 그 짓을 했고 그 덕에 '새롭게(꼴리는 데로..) 규정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함께 자본주의가 엄청나게 발전해 버렸지! 근데 그래서 그게 '정말' 예수 말씀이고 예수가 의도했던 바였다...? 


... 그냥 LGBT건 뭐건 님들은 어디 가서 예수 팔지 마세요ㅋㅋㅋ


...


"그럼 박세환 당신은 사랑을 실천하는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고 계세요?"


응! 난 그렇게 못 살았어! 그래서 사제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거야! 나는 내 삶이 충분히 성경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고 그래서 세속 정치를 논함에 있어 느그들처럼 아무 때나 주님 이름 팔아가면서 합리화를 시도하지도 않는 거야! 페미 피씨 까는 것도 성경과 전혀 상관없는 세속 박세환의 개인 의지일 뿐인 거고!


하늘에 계신 높으신 그분 의지대로라면 페미 건 피씨 건 흉악범 그 누구 건 내 형제자매를 기꺼이 품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난 그렇게 못 하거든ㅇㅇ 원수는 커녕 나는 내 이웃도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 페미 피씨 까려 할 땐 시야의 십자가로부터 애써 눈을 피하려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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