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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26. 2022

증오의 하느님이 어디에 계신가?

아무리 합리화 해도 증오는 그 분의 뜻이 아니지

반복하는 말이지만, 나 역시 세상을 향한 넘치는 증오와 경멸로 살아간다. 중요한 건 신과 전통사상들을 이용해 그런 어두운 감정들을 '숭고한 정의감' 따위로 포장하진 않는다는 거고


전통 보수주의자 느그들처럼, 타자를 향한 증오와 경멸을 숭고한 정의감으로 포장하는, 그런 거 잘하는 부류가 또 있는데 그게 바로 느그들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페미 피씨들이야. 위선이 별거고 가식이 별거냐? 추악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거 뻔히 보이는데 그걸 숭고한 정의감인 양 포장하는 거, 그게 위선이고 가식이지. 전통 보수주의가 짜증 나는 게, 그 반대항이라는 페미 피씨랑 모든 면에서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야!


...


세상에 성(聖)스러운 증오, 성(聖)스러운 배제 따위는 없다. 형제자매를 선과 악으로 분류하고, 그렇게 전선을 긋고, 적으로 분류된 이들을 향해 피와 죽음의 행군을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신성(神聖)으로부터 멀어진다.


그 어떠한 보편 신(神)도 필요악(惡)을 용인하지 않는다. 성전(聖戰)같은 건 그냥 유치한 너의 비열한 망상일 뿐이고 그냥 악이건 필요악이건, 손에 증오와 배제의 피를 묻히는 순간 너는 신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런 걸 용인하는 신이 있다면 그건 그냥 이단 사이비라고 보면 된다. 아즈텍인들이 인신공양으로 숭배하던 그런 신이라 보면 된다. 히틀러 신 스탈린 신 그런 거지ㅇㅇ 


그러니까 둘 중 하나만 선택해라. 증오와 배제의 길로 들어가 거기서 맞이하는 피와 죽음 속에서 끝없는 희열과 쾌감을 얻으며 그렇게 속세의 때묻은 짐승으로 살아가던가, 그 모든 미움들을 내려놓고 신성의 길로 들어서던가.



적어도 신의 이름을 팔아가면서 증오와 경멸을 합리화하고 그렇게 "창녀와 세리만도 못한" 바리새인의 삶을 살아가진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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