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Sep 17. 2022

소고기 이야기

덜 익힌 붉은 육즙의 향


우리 집은 소고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가끔 고기가 들어와 구워 먹을 때가 있으면 언제나 바싹 익혀 먹곤 했는데, 그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당최 돼지고기보다 나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고기는 그저 불고기로 먹던가 국에 넣어 먹는 게 전부였다.


한 5년 전 즈음 소고기를 '아주 약간' 덜 익혀먹어 보았는데, 바싹 익힐 때 보다 확실히 맛이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애써 찾아먹을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3년 전, 처음으로 집 밖에 나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게 중엔 '소고기를 구울 줄 아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내게 소고기를 구워줬다. 치익 치익 양 면에 한 번씩 불질을 한, 그 속은 여전히 시뻘건 끼가 남아있는 그 상태로. 그걸 먹어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왜 사람들이 소고기~ 소고기~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말이야. 여태껏 내가 먹어왔던 그 고기들은 소고기가 아니었던 거지ㅇㅇ


그제야 나는 소위 '더러운 양놈 야만인들'이 왜 스테이크를 레어로 구어 '핏기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먹어왔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더랬다. 덜 익은 고기에서 나오는 그 육즙의 맛과 향.


그 맛은 실로 '배가 부른 상태에서조차' 계속 생각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지. 밥을 배가 잔뜩 부르게 먹어 놓고도 자리에 누우면 마치 어린 시절 멀리 떠나보낸 짝사랑의 추억 마냥 은은하게 떠 오르는 그런 게 있음.


추석때 형수님이 소고기를 구워 줬는데 자꾸 생각나서 적는 글



작가의 이전글 르상티망, 반서방주의, 그리고 러시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