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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Nov 03. 2022

맞아 죽을 각오 하고 쓰는 공권력 실드 글

나였으면 뭐가 좀 달랐을까?

사고 초기엔 긴가민가 했던 분위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의 무능, 더 나아가 정권의 무능을 규탄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사실상 현 정권이랑 완전히 남남이 된 이준석계 자유주의 우파 쪽 사람들도 민주진보진영과 같이 정부 규탄 분위기에 합류하려는 걸로 보이는데 처음부터 기반이 약했던 윤짜장 정부가 죽도록 두들겨 맞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2차 대전, 1943년 나치 독일의 치타델 공세 당시 '켐프 전투단'이라는 부대가 있었다. '켐프'라는 장군이 전담하는 부대라 그렇게 불렸는데 결국 이 부대는 임무 달성에 실패하고야 만다. 정해진 시간 내 지정된 지점까지 진격해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치 독일의 43년 대 쏘오련 공세는 실패로 끝났고 이후부터 45년 종전까지 지난한 후퇴만을 반복하게 된다.  


어쨌든 둥 군인이 임무 달성에 실패했으니 기계적, 행정적으로 처분을 면할 길은 없다. 켐프 전투단은 해체되었고, 수장이었던 베르너 켐프는 한직으로 좌천된다. 


하지만 이 임무 달성 실패를 놓고 켐프가 인간적으로 정말 병맛이었나를 논하는 건 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이를테면, 미션 실패 자체는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더라도 그가 전장에서 실제로 맞닥뜨린 쏘오련군의 규모는 아군의 세 곱절이었다는 걸 고려해보면 그저 전멸당하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임무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정말 전황의 유불리를 떠나 원균처럼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도 충분히 병맛이었는가는 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둥 수백 명이 죽고 상한 참사에서 관련 기관이 징계를 피할 도리는 없다. 누구 말마따나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만 한다."라는 임무에 실패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참사에서 국가는 정말 누가 봐도 등신이었나? 


이를테면 필자가 계속 반복해서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데, 세월호 때는 정말 국가가 병X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300명 실시간 수장 학살 쇼를 지켜보다 정말 "ㄹ혜 야이 XXX!"라는 탄식이 육성으로 터져 나왔었는데 이는 국가의 통치자들이 본인처럼 평민에 불구한 이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차라리 내가 대통령이거나 현장 구조 지휘관이었으면 최소한 ㄹ혜보다는 나았을 거라 감히 장담하고 있다. 하다못해 스스로 몸에 루프 묶고 뛰어들어서라도 배 뒤집힐 때까지 최소 열명은 더 대리고 나왔을 거라 자부한다. 그러한 인식이 있기에, 필자는 아직도 ㄹ혜를 XXX이라 까 부순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내가 경찰서장이나 대통령이었으면 대체 뭘 더 해볼 수 있었지??


어제부터 "3시간 전부터 경고 신고가 들어왔었다." 이 이야기가 돌아다니는데, 막말로 코로나 이후 역대급으로 몰린 인파 속에서 이태원 각지에서는 별의별 미친 신고들이 수십수백 건씩 들어오고 있었을 것이다. 꽐라 상태로 거리에서 주먹질하는 새끼, 취해서 바지 내리고 X 싸는 놈들, 약에 취해 헤롱헤롱 거리면서 성추행하는 것들에 핼러윈 특성을 고려한 장난전화들까지..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특별히 격오지라는 이태원 파출소는 이미 온 가지 잡다한 신고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을 거라고.


종종 이런 뉴스 나오잖아? "스토킹 남성이 결국 여성을 살해. 피해 여성은 이미 5차례나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던 바 있지만 경찰이 이를 매번 무시해왔음이 밝혀져."


이런 뉴스가 나오고 나면 으레 담당 경찰관들에게 징계가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생각해 볼 지점은 정말 경찰이 악의를 품고 그랬겠냐는 것이다. 경찰서는 별의별 신고들로 언제나 항상 북적인다. 공주병 피해망상 과대망상증에 걸린 무수히 많은 이들이 내 귀에 도청장치가 달려있다고 허다하게 신고전화를 넣어대는데 제한된 경찰 인력으로 게 중 '진짜'를 구분하고 투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진짜'를 찾아 대응하는 데 실패한 순간, 우리는 저녁 뉴스에서 그 결과물을 접하게 된다.




어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제한된 장소에 특정량 이상의 인파가 몰리는 상황 자체를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간주하고 선제 대응했어야."라는 논리대로라면 출퇴근 시간대의 수도권 대중교통은 운행해선 안된다. 지하철 2호선이나 강남역을 오가는 그 모든 지옥행 버스들에 일일이 치안인력을 배치해 감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태원이 사탄숭배의 성소(마약과 섹스와 LGBT. 리버럴스러운 향락의 극치?)라서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어떤 머저리들의 말들은 둘째 치고서라도, 며칠 전에 이태원에서 일어났던 그 참사는 사실 출퇴근 신도림역에서 내일 당장 일어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없는 사건이었다. 신도림역을 비롯한 수많은 수도권 전철 주요 역사들은 이미 출퇴근 때마다 그런 인파들이 몰리는데도 이에 대한 별 다른 대책 없이 좌 우 정권을 번갈아 넘나들며 무려 30년 넘게 그 상태로 운영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로 추락 방지 스크린도어가 대대적으로 설치되기 전부터 저러고 살아왔는데 그동안 별 다른 대형사고가 없었던 건 그저 기적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으리라.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무 관세음보살 인샬라..


하지만 오늘을 안전하게 넘겼다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이태원이 '이미 터진' 시한폭탄이었다면, 신도림은 아직 안 터진 시한폭탄이며 한번 터지면 그 파괴력은 더욱 클 것이다.  

(이태원은 일 년 중 하루 이틀이 저러지만 신도림은 일 년 365일 아침저녁마다 매번 저 모냥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수도권 전철을 관리하는 모든 담당자들과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항시적인 임무방기를 지속하는 중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만일 내일 당장 신도림역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신도림역 역장을, 구로역에서 터졌다면 구로구청장을 그때그때 비난하는 게 옳은 일인가?


당연히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 대책은 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수도권 일부 섹터의 인구 과밀 현상에 대해 대비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한 대비책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 백 수 천 건의 잠재적 시한폭탄들을 등짝에 훌처맨 채 하루하루를 무방비로 꾸역꾸역 그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현실에 대해 누군가를 표적 삼아 미움을 발산하는 게 옳은 일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박정희 책임?


+하인리히 법칙까지 들먹일 것도 없이, 막말로 저거 저 상태로 그냥 냅 두면 언젠가 뭐가 터져도 크게 한번 터진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냥 육안상으로도 무지 심각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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