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2의 스토리는 개연성에 충실했는가?
나름 정치 사회분야 덕후로써 스타크래프트의 세계관은 흥미로운 점 투성이이며, 또 흥미로운 만큼 의아한 부분들 역시 존재한다. 지금은 그중 하나인 테란 자치령의 정변(발레리안 : "썩시딩유 파터")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미션을 진행해 보았다면 다들 알겠지만, 아크튜러스 멩스크의 정권은 레이너 일행이 방송국을 점령하고 멩스크가 타르소니에 저그를 풀었다는 부분이 폭로되면서 정권의 정당성 상당 부분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방송국 탈취 작전의 선봉이었던 타이커스 핀들레이와 아크튜러스 맹스크가 내통 관계였다는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이 걸린 문제인데, 멩스크는 어째서 타이커스를 막지 않았는가? 계약은 오직 "케리건을 사살하는 것"에만 매여 있었기 때문에 타이커스의 다른 활동들에 대해선 아크튜러스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그렇게 느슨한 감시 통제 관계였단 말인가? 그렇게 느슨한 감시 통제 관계였다면, 타이커스는 어째서 그 '느슨함'을 이용해 아크튜러스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가?
타이커스와 아크튜러스 간의 '계약'에 대해선 이 밖에도 의문사항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는 이즘 해놓고 넘어가자. 다음에 논 할 부분은 계승이다.
아크튜러스의 정치적 정당성은 일개 개인 정권의 정단 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황조의 창시자, 태조 임금이며, 그의 정치적 정당성은 개인 정권의 정당성을 너머 자치령 황조 체제 자체의 존립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레이너 일행의 폭로는 아크튜러스 맹스크라는 인물의 개인적 결함을 너머, 그의 황조 창업 과정 자체가 어떤 숭고한 정치적 이상이 아닌, 사리사욕과 사적 응보 욕구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이때 붕괴되는 것은 아크튜러스 개인의 정권 정당성이 아니다. 자치령 황조 체제 전체가 무의미한 것이 된다!
황조의 정치적 존립 정당성 자체가 붕괴한 상황에서, 발레리안은 어떻게 황위를 '계승'할 수 있는가? 멩스크 황조의 정치적 정당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코프룰루의 테란인들은 어째서 황조 자체의 해체와 공화정 복귀를 주장하지 않는가?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발레리안이 황위를 계승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황태자는 아비에 불복하여 악명 높은 테러집단 수괴와 악질 외계인 괴물들과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황좌를 찬탈하였다.
자, 박근혜 탄핵정국 때처럼 기존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 흔들리고 있을 때, 다른 정치가가 나타나 '중공군'과 '일본 자위대'의 무력 도움을 받아 청와대와 정부청사를 점령하고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 하자. … 국민들이 그 정권을 지지할까?
정변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은 언제나 그중에서도 급이 가장 낮은 방식으로 통한다.
혹자는 코프룰루 섹터의 민도 수준이 전근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자신들의 통치자가 쓰레기 건 무엇이건 그것을 따져가며 통치를 받아들일 상황이 못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 분석인 게, 애초에 맹스크가 언론을 통제하려 했음을 생각해 보자. 통치세력이 언론을 통제하려 함은, 역설적으로 민심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말 전근대식으로 민심이라는 것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통치였다면 방송국 따위 누가 점령하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동탁이 민심을 신경 쓰던가?)
실제로 "레이너의 폭로"가 있고 나서 아우구스투스 그라드 도처에선 심각한 폭동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오며 이는 코프룰루 테란 지역의 민도가 결코 전근대 수준에 머물러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 스타크래프트의 '황위 계승' 파트가 정치적 개연성을 상실한 부분이라고 본다. 민중은 분명 근대 이후의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오는데 정권교체의 모양새는 철저하게 전근대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