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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들이 만드는 역사의 종언

약점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by 박세환

완벽한 사회체제가 이루어졌을 때, 사회 체제 발전으로써의 역사는 종결된다. 소위 말하는 역사의 종언이며, 여태껏 존재해 온 세상 모든 제체들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해왔다.


"우리 체제가 가장 위대하다. 우리의 체제는 사회발전의 정점이다. 고로 더 이상의 역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기독교 신정체제도, 이슬람 신정체제도, 자유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두 각자 역사의 종언을 선포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진짜' 종언이었던 적은 없었다. 완벽하다 생각했던 그 체제는 항상 시간이 흐르면서 결함을 드러냈고, 야속한 역사는 그렇게 또 한 칸 더 앞으로 진행되곤 했다.


기성 패러다임을 쥐고 있는 기득권들 입장에선, 자신들 체제의 결함이 드러나 체제의 수명이 다하고, 그렇게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기존 패러다임이 최대한 장기 지속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사회적 스피커(언론, 교육, 영화, 문학, etc)들을 적극 활용한다.


기득권이 장악한 사회 스피커들은 기성 패러다임의 위대함을 끝없이 노래한다. 그러나 스피커들이 기성 패러다임 존속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헌신은,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기성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에 퍼지지 못하도록, 스피커들은 기성 패러다임 입장에서 불리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배제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페미니즘이 장악한 스피커들은 남자가 여자에게 피해받는 사례들에 대해선 절대 말하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세상엔 언제나 남자에게 피해받는 여자들로 가득하지만 그 반대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여자는 항상 피해자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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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스피커 장난질 속에서, 기성 패러다임의 문제점들은 언제나 배제되고 가려진 체로 남게 되고 이 부분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은 세상 자체를 왕창 때려 부수기 전엔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표출할 방법이 없다.

기성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기성 체제는 완전한 것으로 여겨지며(헤겔의 절대정신 도달), 정반합으로써의 역사도 '억지로' 종결되야만 하는 것이다.


쨋든 확실한 것은, 압제는

말해야 하는 이가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부터 나온다.


+자신들이 역사의 종결이라 말해 왔던 모든 기득권들이 종국엔 시간의 물결 속에 뒤로 쓸려져 나갔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 신정체제도, 조선의 유교 왕조체제도, 이슬람 신정체제도, 파시즘 체제도, 공산주의도 모두 다. 모두 자신이 '진짜 역사의 종언이고 헤겔식 절대정신에의 도달'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정말로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난 항상 상상한다. 백 년이 지나고 이백 년이 지나 또 전혀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게 되면, 오늘의 68 혁명 신좌파 포스트모던 체제는 어떤 느낌으로 역사 속에 기록되게 될까? 사회문화를 장악한 포스트모던 기득권들은 어떤 존재로 역사에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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