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99%가 추악한 1%에게 맞선다."라는 낭만
1:99의 슬로건을 내세우는 좌파 엘리트들이 자주하는 착각중 하나는, 1%에게 착취당하는 99%가 선량하다는 것이다. 특히 좌파로 왔지만 출신성분은 귀족 엘리트인지라 실제 치이고 밟히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경우 이러한 착각은 더욱 심해진다. 이들의 망상속 서사에서는, 선량하고 아름다운 99%가 언제나 정의롭게 연합하여 사악한 1%에게 맞선다.
물론 망상은 망상인지라 이러한 상황은 실제 현실속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1%가 99%에게 상처를 주듯, 99%도 다른 99%에게 언제나 상처를 준다.
물론 가장 주된 착취는 1%가 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이들은 밑바닥 천 것들 입장에선 너무나 복잡해서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난해한 경제구조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취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착취는, 복잡한 금융공학 원리에 의거, 각자의 계좌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숫자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절묘해서 눈치채기 어렵기 때문에, 하위 99%의 삶 속에서 정말로 서로를 감정적으로 화나게 만드는 일들은 1%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실질적인 착취가 1%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서로를 직접적으로 할퀴고 상처 주는 것은 대게 그들 자신들이다.
서로 어쭙잖게 사기 치고, 강도질하고, 주먹다짐하고, 왕따 시키고, 괴롭히고, 상처 주고, 짓밟는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은 서로 간의 원한과 증오를 증폭시킨다.
이러한 '복잡한 사연'을 무시하고 만들어지는 좌파 스토리텔링 서사들, 1%를 상대로 '선량하고 우직한' 99%가 힘을 합친다는 류의 좌파 엘리트 판타지는, 그러나 다수의 대중에게는 그다지 와 닫지 않는 이야기이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기 때문에, 또 그만큼 비현실적이다. 실재 그 99%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다른 99%가 그렇게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인 판타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지난 이 백 년 동안 실패한 정치 판타지였다.
(좌파가 99%에게 먹힐만 한 스토리텔링을 만드려 한다면, 제발 그 99%의 삶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야만 한다.)
혹자는, 실제 99%가 착하지 않다고 해서 99%의 '사악성'을 인정해버릴 경우, 또 그 '인정'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들을 만들어낼 경우 99%를 위한 정책들에 대한 지지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듯 하다. 간단하게, 99%의 인간이 말마따나 사기꾼과 성추행범, 강도와 도적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런 인간들을 위한 복지나 배려정책을 누가 지지하겠느냐 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건 애초부터 번짓수를 잘못 집은 걱정이다.
우리가 99%를 위한 복지정책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말마따나 사기꾼과 파렴치범을 가득한 그 99%를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99%를 위한 정책을 지지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니가 그 99%이기 때문이야!!
때론 거짓말하고
때론 폭력적이며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비열한,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라고 자위하는 바로 당신! 두 손에 때론 똥을, 때론 남의 피를 묻히며 살아 남아야 했지만 그 비열한 죄악들에 대한 댓가로 차디찬 아스팔트 길바닥에 병든 체로 들어누어 그렇게 쓸쓸하게 죽어가고싶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복지를 지지하고 분배를 지지해야만 하는거야!
99%가 "너무나 선량하고 아름다운"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이들로 하여금 좌파정책을 지지하게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좌파정책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만 깨닫게 해 주면 그만이다. 그것만 깨닫게 만들 수 있으면 99%의 정치적 연합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99%의 이익 이전에 너의 이익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면 된다.
그 99% 안에 당신도 들어있음을 깨닫게 해 주면 된다.
+수년 전엔 나도 "우리 인간은 아주 아름답고도 가련한 존재에요~"하는 말을 했었다. 근데 '좌파 철학하는 친구'가 그러면 안된다더군.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