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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28. 2022

'재벌집 막내아들' 이슈

예쁜 악(惡)과 추한 선(善)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마지막 편'으로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한 중인데, 필자는 이 이슈의 본질이 일전 '우영우 비판' 이슈와 동일하다고 본다.


민주진보 리버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백인 대졸 수도권 중산층 여성 정서', 줄여서 '힐러리 클린턴 정서'에 대한 비토라는 말이다.




옛날에 여자아이들을 상대로 끗발 날리던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프랑스 왕정 말기-혁명 초기 기깔라게 잘쌩기고 늘신하게 잘 빠진 귀족청년들의 삶을 배경삼은 작품이다. 


혁명이 터져 나오는 마지막 장에서, '기깔라게 잘빠진' 주인공 귀족 청년들은 혁명파의 편에 서는데, 이로써 작품은 앙시앙레짐에 반대하고 굶주린 민중의 편에 섰다는 주제의식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여기서 태클을 좀 걸어보자. 


작품은 내내 '기깔라게 잘 빠진 늘씬한 귀족 청년들의 고결하고 멋진 삶'만을 조명한다. 왕정 말기 극단에 치달은, 과도하게 아름다운 귀족사회의 화려함은 있는 데로 없는 데로 다 즐기다 마지막 장에 들어서서 "아무튼 우리는 혁명군 편에 섰뜸"이라는 얄팍한 설정 하나로 "아무튼 어쨌건 만화는 억압받는 백성들의 아픔을 옹호했다."라는 알량한 도덕성 한 뿌리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로 억압받는 피 지배자들의 똥오줌으로 범벅된, 피칠갑한 그 못생기고 징그럽고 추잡한 삶 그 자체는 하나도 직면하지 않으면서, 화려한 귀족의상 위에 "아아~ 나는 귀족이지만 여린 백셩들의 아픔에도 공감할 줄 하는 안팎이 모두 아리따운 숭고한~"이라는 액세서리 한 점 만 패션 아이템으로 추가하시겠다는 것 아닌가! 삼국지톡의 원소 캐릭터 그 잡채ㅇㅇ


'우영우'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짜 자폐층을 앓고 있는 그 가정들의 똥오줌 범벅과 피칠갑된 징그럽고 못! 생! 긴! 삶 그 자체는 직면하지 않으면서, 누구보다도 예쁘고 귀여운 여배우에 천재 변호사라는 기깔나는 귀족 액세서리를 아이템으로 얹혀놓고 "아무튼 자폐층 가정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까지 착한 우리들"이라는 정신적 자위행위를 맘껏 즐기시겠다는 거 아닌가?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


'재벌'이라는 소재를 통해 또또또 그 '중산층 대졸 힐러리 클린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귀족사회의 화려함을 만긱하려 함이 너무나도 뻔 한데 막판에 '비리 부정을 저지르는 사악한 재벌가에 대한 보복 완성'이라는 알량한 설정 몇 장을 얹혀서 "아아 나는 귀족사회의 풍미를 즐길 줄 아는 차가운 도시 여자. 하지만 불의에 억압받는 이들에겐 따뜻하겠지?" 놀이들을 하시려는 거 아닌가?




나는 이 드라마가 '부조리한 재벌체제를 향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그렇게 욕먹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치면 만화 '송곳'은 빨갱이 작품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다 오체분시 되어 사라졌어야지.(아, 물론 드라마는 촘 별로였긴 했다. 배우부터 미스매치였어..)  



송곳은 '부조리한 자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좌파적 문제의식을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깔아두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에 걸맞게, 그 저항의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똥! 오줌! 피칠갑! 들 역시 피하지 않았다. 단 한 점도 말이야.


'송곳'은 저항의 대상인 자본체제뿐 아니라 이에 맞선다는 노조집단의 '똥오줌들' 역시 적나라하게 묘사해 버린다. 이것이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이며, 대안우파들의 정서를 만족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세 작품은 다르다. 작품은 진짜 밑바닥 세계의 삶들이 품고 있는 못! 생! 기! 고 추잡한, 똥! 오줌! 설사들! 에 대해선 하나도 직면하려 하지 않으면서 '얄팍한 약자설정 몇 개'만 가증스럽게 걸쳐 넣곤 "우리는 고통받는 민중의 삶에도 공감할 줄 하는 고결한 힐러리 클린턴들~"이라는 가식적인 자위행위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는 어쩌면 바로 저런 작품들에게 가장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똥! 오줌! 에 범벅되지 않는 선(善)이란 가식이고 거짓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선은 반드시 그 절실한 만큼 똥오줌에 범벅된 추하고 못! 생! 긴!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반면 예쁘장하고 아름다운 속에 선(善)이 있을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딱 그 정도일 거라 본다. 때문에 진정한 시대의 선(善)을 행하려는 자들은 반드시 똥오줌 속에서 추하고 못생겨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귀족적이고 고아한 아름다움을 챙기면서 실천할 수 있는 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선(善)은 미(美)와 함께할 수 없다. 언어도단이고 가식 위선이며 거짓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서사들은 대부분 틀렸다. 거짓말이다. 대부분 천사가 예쁘고 악마가 추하게 나오잖아ㅇㅇ


그리고 대안우파들은 그런 힐러리 클린턴식 마인드들이 너무나 역겨운 거야. 그게 대안우파들의 위악심을 자꾸 자극하는 거라고!



+텐션이 초큼 올라가긴 했는데..

솔직히 못생겨야 선이고 예쁘면 100% 악이라 하는 건 초큼 오바긴 하지. "선(善)은 반드시 추(醜)하다."라는 명제의 옳고 그름 여부를 떠나 사아람이 평생 살면서 추(醜)만을 추구하며 살 수도 없을 거고 말이야. 나도 그렇게는 살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히 하고픈데


진정으로 추구하는 선(善)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위해 오줌똥을 묻히며 추(醜)함을 능히 각오해야 할 상황이 있기 마련이며, 또한 기꺼이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번 언급한 '수도권 중산층 대졸 여성 민주진보 리버럴 힐러리 클린턴 정서'로 만들어지는 그 작품들 속에선 '그런' 각오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야!


선(善)이 주가 되고 미(美)가 부가되는 게 아니라!

미(美)가 주가 되고, 그 미(美)의 완성을 위해 선(善)을 부수적인 액세서리로 소비하려는 그 얄팍한 심리가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고.

그게 너무 배알 꼴리고 대안우파적인 위악 심술을 자극한단 말이야!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투쟁한다는 데 뭐가 이렇게 고아하고 이쁘장해? 오물로 여기저기 더럽히면서 모독하고 싶어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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